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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성호]구글의 실패가 부럽다

입력 | 2015-02-09 03:00:00


이성호 사회부 차장

“구글 글라스 개발팀은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글로벌 기업 구글의 실적 발표 현장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패트릭 피셰트가 한 ‘고백’이다. “잠시 시간을 갖고 전략을 다듬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족을 붙였지만 사실상 “우리 제품은 실패했다”고 선언한 셈이다. 구글 글라스는 2012년 웨어러블(몸에 착용할 수 있는) 기기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는 찬사 속에 등장했지만 불과 3년도 안돼 쓸모없는 기계덩어리가 됐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기업의 ‘헛발질’에 여기저기서 기다린 듯 비판을 쏟아냈다. 구글이라는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일부에서는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사실 전문가들은 기술적 한계, 사생활 침해 논란 등을 이유로 구글 글라스의 실패를 예상했다.

중요한 점은 구글 글라스의 실패를 구글의 실패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이번 실패가 구글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안다. 그러나 구글 기업문화의 장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은 분명하다. 이번 피셰트의 발표를 뉴스로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실패의 선언이었다. 시쳇말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던 엄청난 제품을 만들어 놓고 ‘생각보다 별로였음!’을 공식석상에서 밝힌 것이다.

과연 한국 기업들 가운데 구글처럼 자사 제품이나 사업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실토한 곳이 있는가 떠올려봤다. 기억력 탓이기도 하겠지만 한국기업의 ‘고해성사’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는 뉴스를 접하거나 “전례 없는 위기”라는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을 뒤늦게 전해 들을 뿐이었다.

이는 실패를 바라보는 기업문화의 차이 탓이다. 구글은 실패 자체를 비판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문화로 유명하다. 구글뿐 아니라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은 구성원의 실패를 용인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시스템을 갖추려 노력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기업 직원이나 벤처창업가가 한 번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에 빠진다. 기업과 사회에서 죄인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2013년 한국을 방문해 “실패를 허용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비슷하다. 월급쟁이 1600만 명을 열 받게 한 연말정산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책 자체의 문제이든, 민심을 잘 읽지 못했든 실패는 실패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 가운데 누구 한 명 나서서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증세와 복지 논란을 거치며 이제 사람들은 ‘증세 없는 복지’가 실패한 약속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인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구글의 실패가 부러운 이유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