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켜요 착한운전]<4>분노의 경적을 줄이자
자동차 경적이 도로 위 분쟁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위험을 알려 배려의 사인이 되어야 할 경적이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면서 심지어 폭력과 범죄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경적을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 1분에 10번 울리는 자동차 경적
지난달 23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터리. 7개 도로가 만나는 복잡한 구조로 서울의 상습 정체구간. 이곳은 금요일 오후를 맞아 오가는 자동차로 가득 찼다. ‘빵빵’대는 경적 소리가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며 일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경적 사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날 서울시내 주요 교차로 네 곳(영등포구 영등포로터리, 강남구 교보타워사거리, 동대문구 신설동로터리, 마포구 공덕오거리)을 살펴봤다. 경적 횟수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운전자들이 보여준 경적 이용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같은 시간대에 교보타워사거리, 신설동로터리, 공덕오거리에서는 각각 253회, 91회, 148회의 경적이 울렸다.
○ 경적 소리에 스트레스지수가 ‘1→9’
이같이 무차별로 울리는 경적은 소리를 듣는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경적이 인체에 미치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26일 방송인 박은지 씨와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를 찾았다. 취재팀은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평소 경적 소리에 따른 박 씨의 스트레스지수 변화 추이를 살펴봤다.
방송인 박은지 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에서 자율신경균형도측정기를 착용하고 74dB에 이르는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고 있다. 아무 소리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안정 단계인 ‘1등급’이었던 박 씨의 스트레스지수는 경적을 듣자 위험 단계인 ‘9등급’까지 올라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분노는 버리고 배려의 경적을 울리자
경적은 꼭 필요할 때 사용한다면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지만 남발하면 소음과 고통을 만드는 독이 될 뿐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운전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경적을 사용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승용차 운전자에겐 범칙금 4만 원이 부과된다.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만 경적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갈등을 줄이고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운전자 및 보행자와의 충돌이 우려되거나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고 할 때처럼 경적이 위험을 알리는 배려의 신호로 쓰일 때 경적의 순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도로교통공단 장석용 박사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빨리빨리’문화 때문에 경적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며 “불필요하게 경적을 울려봐야 서로 스트레스만 받고 빨리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초보 운전자나 고령 운전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느리게 운행하는 초보 운전자에게 경적을 울리며 위협하는 사례가 많아 초보 운전 스티커를 일부러 안 붙이는 운전자도 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