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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이완구, 총리감 아니다

입력 | 2015-02-10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의혹은 일단 제쳐 놓자. 그의 이력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노라면 남다른 생존과 적응능력이 느껴진다. 유신 시절 경제기획원 사무관에서 경찰 관리로, 민주화된 이후 지방경찰청장에서 국회의원으로, 여야 권력 교체가 시작된 이후 신한국당에서 자민련으로, 다시 한나라당으로 소속을 바꿔가면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이적할 때마다 오히려 입지를 강화하는 수완을 보여줬다.

감탄할 만한 수완이지만 기분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뭐라고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기 이익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털끝만큼도 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볼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라고나 할까.

그는 김영삼 정권에서 집권당인 신한국당 의원이 됐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자민련에 입당해 DJP(김대중+김종필)연합에 의해 다시 집권당의 일원이 됐다. DJP연합이 깨질 때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노무현 집권기에는 야당이긴 했지만 충남도지사가 됐다. 박근혜 정권에서 다시 집권당인 새누리당 의원이 됐다.

그가 총리 후보로까지 낙점된 데는 세종시를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의 협력이 결정적이다. 세종시는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합리적 선택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세종시는 노무현 정권이 ‘재미 좀 본’ 수도 이전 공약을 지킨다고 정말 법을 만들었을 때 실패했고, 헌법재판소가 그때까지 소수의 법학자 외에는 듣도 보도 못한 ‘관습헌법’을 들어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판단했을 때 더 큰 실패의 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이 찬성해서 수도 이전을 수도 분할로 변경했을 때 더 큰 실패가 실현됐고, 이명박 정권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때 박 대통령이 반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세종시는 오로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서는 성공이었는데 그 성공을 위한 충청권 파트너가 이 후보자였다. 이 후보자가 권력에 항의해 사표를 던진 적(충남도지사 임기 만료 1년을 앞두고 사퇴한 것)이 한 번 있는데 이명박 정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때다. 세종시가 없었다면 이완구도 박근혜도 현재의 자리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총리의 자질은 한 나라를 경세할 만한 식견도, 내각을 다잡는 리더십도 아니다. 식견은 자신의 식견으로도 충분하고, 장관은 대면(對面)도 없이 통솔한다고 자부하는 박 대통령이다. 그에게 절실한 것은 청와대 정무수석의 역할을 내각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정치기술이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는 물론 없고, 그의 비서실장에게도 없고, 또 새로 낙점할 후임 비서실장에게도 분명히 없을 그런 기술 말이다.

이 후보자는 오늘 시작되는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시도할 것이다. 안 봐도 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언론 보도통제 압력에 대해서는 불찰이었다고 사과하고 억대 연봉 차남의 건강보험료를 떼먹은 일은 미처 몰랐다고 하면서 뒤늦게 납부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지루한 공방으로 무슨 말인지 모르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본인의 병역 기피 의혹이나 경기대 조교수 특혜채용 의혹은 오래전 일이라 의혹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완강히 부인하면서 버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사욕(私慾)을 의리(義理)에 앞세운다고 비판하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공직자의 공적 마인드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이 후보자의 삶에서는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 기회는 모조리 활용해 자기 이익을 실현한 순간은 너무도 많이 눈에 띈다. 국민의 존경을 받을 총리감이 아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