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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정세진]오일게이트의 추억

입력 | 2015-02-10 03:00:00


정세진 산업부 기자

2005년 4월 필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무작정 취재원을 기다리는 이른바 ‘뻗치기’를 열흘간 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세 이광재 전 의원이 개입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오일게이트’와 연루된 석유개발 전문가 허문석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돌연 사라져 인도네시아로 입국한 허 씨는 아파트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지하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렸지만 결국 한 건의 기사도 못 썼다.

그러던 중 2007년 5월경에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사할린의 오크루즈노에와 포그라니츠노에 유전 2곳에서 약 2억4300만 t(약 17억 배럴)의 추정 매장량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당시 배럴당 64달러를 기준으로 약 100조 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오일게이트라는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면서 한국 기업이 투자를 포기한 곳이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정치적 사건으로만 몰고 가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100조 원을 날렸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1년과 2012년에 필자는 볼리비아의 리튬 개발 현장을 취재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사업이다. 2012년 7월 리튬전지 소재 생산을 위한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자원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볼리비아 정부의 변덕은 죽 끓듯 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포스코가 주축이 된 한국 측 협상단은 해발 3500m가 넘는 호텔과 협상장을 오가며 볼리비아 측과 줄다리기를 했다. 현재 포스코 회장인 당시 권오준 포스코 사장도 수행 직원 한 명 없이 협상에서 고군분투했다. 필자도 고산병 약을 먹으면서 협상 과정을 지켜봤다. 우여곡절 끝에 협상은 타결됐고 한국이 중국 일본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 리튬 보유국 볼리비아의 파트너가 됐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최근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시작되면서 지난 정부의 자원개발 주역은 ‘게이트의 주역’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차관 시절 누구보다 자원외교의 중요성과 실적을 강조했던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우리는 자원개발 능력이 없었다”며 말을 바꿨다.

일부 야당 의원은 지난 정부의 자원개발 투자로 4조 원대의 손실이 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턱밑을 넘나들던 때의 사업적 판단을 배럴당 50달러 수준인 현재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유가와 원자재가격의 하락을 당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의 자원개발 사업에 실세가 등장하면서 정치적 홍보 수단이 됐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남미처럼 정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유력 인사가 아닌 시스템으로 접근하라”는 조언은 탁상공론이다.

한국의 에너지 공기업들은 정치권의 공세에 잇따라 해외 자원개발 현장을 헐값에 던지고 있다. 자원외교의 실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몇 년 뒤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필자와 같이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