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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품 强國으로]뚝심으로 일군 ‘1000억 달러 흑자’, 이젠 첨단화·차별화다!

입력 | 2015-02-11 03:00:00

전문가 좌담 / 소재부품 산업이 가야 할 길




3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소재부품 산업이 가야 할 길’을 주제로 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소재부품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4년 한국 소재부품 산업의 무역수지 흑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을 계기로 국내 산업 전체의 체질을 탈바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이 세계 시장을 휩쓸었던 스마트폰, 자동차, 조선 부문에서 중국 등 주요 신흥국들이 가격을 무기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한국이 소재부품으로 이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던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정부 및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업계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재부품 산업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산업통상자원부의 박청원 산업정책실장과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박종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정준환 아모텍 대표이사, 홍성택 코렌텍 대표이사는 3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좌담회를 열고 소재부품 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지난해 달성한 소재부품 1000억 달러 흑자에 대해 평가해 달라.

▽박청원 실장=감회가 남달랐다. 20여 년 전 사무관 시절 ‘소재부품 국산화 대책’을 마련하면서 부처 내에서도 “그게 되겠나”라고 반신반의했는데, 정부가 뚝심 있게 밀어붙이면서 오늘날의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2000년대 들어 ‘부품소재특별법’을 제정한 이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원천기술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과거 조립가공에 머물렀던 산업구조에서 소재와 부품을 우리가 직접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정재훈 원장=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소재부품 무역수지는 세계 시장의 수요에 따라 출렁였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한국 소재부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안정적 흑자 기조가 굳어졌다. 소재부품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마련한 ‘정책 메뉴판’을 바탕으로 기업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술을 개발하면서 ‘1000억 달러 흑자 돌파’라는 결실을 맺었다. 한국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고 하지만, 소재부품 경쟁력을 갖춘다면 약간의 경제적 부침이 있더라도 전체적인 산업의 안정적 흑자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소재부품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을 소개한다면….

▽이영수 원장=
소재부품 산업에서는 중소·중견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을 위한 대책은 연구개발(R&D) 지원과 인력 양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상당수의 중소·중견기업들은 R&D에 성공하고도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기업을 키우지 못하는 이른바 ‘성장통’을 겪는다. 생산기술연구원의 ‘성장통 극복사업’은 바로 이런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분석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소재부품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금형 등 ‘뿌리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뿌리산업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박종래 교수=소재부품 강국인 일본은 원천소재 기업에 대한 지원에 힘을 싣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의 몇몇 제조업체들이 한국으로 이전을 했지만, 부품가공 업체가 옮겨왔지 원천 소재 공장은 여전히 일본에 두고 있다. 경쟁력이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기술을 한국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재부품 무역흑자가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산업 체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부품 흑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른다. 아직 소재부품 산업의 내공이 더 쌓여야 한다는 뜻이다. 소재 강국인 일본의 지원책들을 한국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정부 및 유관기업의 소재부품 지원 대책에 대해 기업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홍성택 대표=
코렌텍은 인공관절을 개발하는 업체다. 산업부,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회사를 이만큼 키웠다. 인공관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는 전량 수입을 하는 실정이다. 사업 특성상 해외 기술이나 인프라를 많이 이용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지원 체계가 있었으면 한다. ▽정준환 대표=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기술만 놓고 보면 아직 일본 등에 비해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단순히 우수한 기술을 확보한다고 해 승부가 나는 것은 아니다. 아모텍만 보더라도 일본의 경쟁업체들에 비해 시작은 늦었지만 고객 요구를 빠르게 수용하고 고객 눈높이에 맞게 품질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정부가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국내 소재부품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박 실장=중국은 우리 소재부품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이다. 그런 면에서 한중 FTA가 국내 소재부품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중국 시장을 잘 활용하면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철강, 석유화학, 첨단소재 등의 분야에서 중국 시장의 문이 더 넓게 열리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기본으로 중국 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중국 제조업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소재부품 산업의 가장 중요한 분야인 기계류는 한중 FTA가 큰 기회가 될 것이다. 기계부품을 단독으로 수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기계부품과 이에 따른 공정, 시스템을 패키지로 묶어 향후의 부품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정 원장=중국의 기본 전략은 인해전술이다. 세계에서 시계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중국이다. 하지만 누구도 중국을 ‘시계 강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단순한 범용 제품이 아닌, 차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이제까지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수출을 했다. 앞으로는 중국 내 토종 대기업을 뚫어야 한다. 그들에게 ‘한국 소재부품은 뭔가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인간의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차별화된 기술이 필수다. 단순 재질을 이용한 소재를 포함해 각각 센서 및 사물인터넷(IoT)과 연결하는 기술 등이 필요하다.

▽이 원장=중국 시장 진출의 열쇠는 결국 기술 경쟁력 강화다. 앞으로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도 기술융합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향후 융합 역량강화 R&D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현장 밀착형으로 지원을 할 생각이다. 기술 개발과 이에 따른 제품 개발, 마케팅 전략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면 국내 기업들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꾸준히 키워나갈 전략이 필요할 텐데….

▽박 교수=독일의 경우 소재부품 산업 자체도 강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계장비, 즉 인프라가 강하다. 소재와 장비가 동시에 강하니 강소 기업, 히든챔피언이 나올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소재와 부품 그 자체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장비, 계측기기 등을 모두 해외에서 들여왔고, 이 과정에서 R&D 정책자금의 상당액이 해외로 나갔다. 앞으로 소재부품을 발전시키려면 산업생태계의 체질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봐야 할 것이다. 소재부품뿐 아니라 개발에 필요한 장비나 기계를 묶어서 한꺼번에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첨단 트렌드에 맞춰서 정보기술(IT),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소재부품 기술 발전이 절실하다.

▽박 실장=1000억 달러 흑자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남았다. 박 교수님 말씀처럼 소재부품 분야에서 그동안 해왔던 것과는 다른 패턴의 소재와 부품이 많이 필요하다. 정부 및 유관기관의 R&D 정책 분야에서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3D프린팅 등의 분야에서는 부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산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소재 분야에 더 중점을 두고 투자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 향후 소재부품 R&D 정책자금의 70%는 소재 쪽에 집중할 것이다. R&D를 통해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정부는 규제를 최대한 해소하고 시장에 하루빨리 나올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으로 관련 행정을 처리할 것이다. 국내 소재 분야 중소기업들이 신소재를 열심히 개발했는데도 제대로 팔지 못하는 애로사항을 여러 번 봤다. 중소기업들에 힘이 될 수 있도록 산업 정책적 측면에서 고민하고 최대한 지원하겠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