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한 귀농·귀촌 박람회장. 방문객들이 지자체 부스를 찾아 귀농·귀촌 상담을 받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치열한 경쟁과 삭막한 도시를 내려놓고 전원에서 좀 더 여유로운 인생 2막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의 마음 또한 이렇지 않을까.
희망을 가득 품고 전원행을 준비하지만 한편으론 엄습하는 불안감을 지울 길이 없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이에게 직장 선배의 조언과 배려의 손길이 필요하듯이 귀농·귀촌의 첫걸음에도 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가 바로 ‘귀농·귀촌 멘토’다.
귀농·귀촌 멘토는 귀농·귀촌 상담 설계사, 귀농 닥터, 귀농·귀촌 현장 코디네이터, 귀농 현장 지도교수, 선도 농업인 멘토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여기에는 먼저 시골에 내려와 성공적으로 정착한 귀농·귀촌 선배는 물론 마을 이장이나 유지, 귀농 담당 공무원, 고소득 작목 재배 농민, 농협 직원 등이 두루 포함된다. 이 외에 ‘자칭 멘토’도 수두룩하다.
2009년부터 귀농·귀촌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만큼 멘토의 역할 또한 중요해졌다. 2011∼2013년 귀농 인구만 해도 매년 1만 가구를 넘어섰다. 2013년 귀농·귀촌 인구는 전년보다 20% 증가한 3만2424가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4년 통계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3만 가구만 된다고 해도 2001∼2014년 누적 귀농·귀촌 인구는 약 12만 가구로 전체 농가(2013년 114만2000가구)의 10%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좋은 멘토’는 예비 또는 새내기 귀농·귀촌인들의 시행착오를 줄여 농촌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좋은 멘토를 만난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이다.
강원도의 한 전문 농업인은 “땅 사고 집 짓고 소득 작목을 선택하는 일은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직면하는 최대 애로 사항이다. 그런데 일부 귀농·귀촌 멘토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땅이나 농산물, 모종·묘목 등을 비싸게 팔아 잇속을 챙기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멘토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멘토의 ‘선을 넘는’ 행위로 인한 부작용도 점차 커지는 것 같다”며 “좀 더 엄격한 선정 및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귀농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이 같은 장사꾼 멘토나 사기꾼 멘토에게 피해를 본 사례들이 종종 올라온다. 오래전에 경상도로 내려간 한 귀농인은 “일부 선배 귀농인 멘토나 원주민 농부 멘토들이 예비·초보 귀농인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하다시피 하는 사례를 직접 보고 들었다. 귀가 여린 이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필자도 주변에서 멘토 격의 선배 귀농·귀촌인들이 자기 땅을 시세보다 비싸게 떼어 팔았다가 나중에 갈등을 빚는 사례를 간혹 보았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712만 명)의 본격적인 은퇴와 맞물려 점화된 귀농·귀촌 열풍은 시대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부 나쁜 멘토가 이를 돈벌이 기회로 계속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생 2막 귀농·귀촌은 삶을 통째로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이다. 예비 귀농·귀촌인들은 도시와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하나씩 개척해 나가야 한다. 때론 멘토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오로지 의존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서겠다는 마음가짐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정부와 지자체가 멘토 부작용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