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사이 사이
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휘영청 쏟아질 듯 집을 짓는구나
된바람 매연도 아랑곳 않고
포클레인 드르륵 놀이터 왕왕시끌도
끄떡없을 너희만의 왕국을 가꾸는구나
부우연 서울 하늘 무색타
까맣게 집을 박는구나
북한산 죽은 가지 베물고
햇새벽 어둠 굼뜨다 훠이훠이
부지런히 푸들거리는구나
무어 더 볼 게 있다고
무어 더 바랄 게 있다고
사람 사는 이 세상 떠나지 않고
아직도
정말 아직도 집을 짓는구나
게으른 이불 속 코나 후빌 때
소련 붕괴 뉴스에 아침식탁 웅성거릴 때
소리 없이 소문 없이
집 하나 짓고 있었구나
자꾸만 커지는구나
갈수록 둥그래지는구나
봄바람 싸한 냄새만 맡아도
우르르 알을 까겠지
둥그렇게 새가 집을 지을까?
봄이 아직 저만치 먼데 ‘아스팔트 사이 사이/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집을 짓는 새에게 ‘휘영청’ 쏟아지는 시인의 마음이다. ‘된바람 매연’, ‘포클레인 드르륵 놀이터 왕왕시끌’, 하늘도 부연 이 서울에서 ‘아직도/정말 아직도 집을 짓는구나’! 도무지 살 만하지 않을 이 인간 세상에 ‘무어 더 볼 게 있다고/무어 더 바랄 게 있다고’ 깃들이는 새여, 미안하고 기특하고 고맙구나! 이 시가 쓰인 시기는 ‘소련 붕괴 뉴스에 아침식탁 웅성거릴 때’다. 그 뉴스에 세상이 무너진 듯, 자신의 전 생애가 ‘꽝’이 된 듯, 충격받은 사람도 있을 테다. 인간사 어떻든 아랑곳 않고 ‘끄떡없을 너희만의 왕국을 가꾸는’ 새들. ‘봄이면 알 낳고 새끼 치려고’ ‘죽은 가지 베물고’ ‘부지런히 푸들거리는구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지. 시인도 일찍 일어나는 새인가 보다. 그래 ‘햇새벽 어둠 굼뜨다 훠이훠이/부지런히 푸들거리는’ 새를 보고 시를 잡아챘을 테다. 최영미는 어딘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제 욕망을 매개로 거침없이 펼치는 그이 시들의 서사에서 화사할 정도로 활달한 생명력이 느껴져서일까. 어떤 패배 속에서도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분연히 희망을 뇌는 스칼렛 오하라. 이 시도 최영미 시 특유의 톡 쏘는 맛은 덜하나 ‘봄바람 싸한 냄새만 맡아도/우르르 알을 까겠지’ 같은 시구에 야생초 같은 생기가 찌르르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