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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명예의전당 스타탐구] ML 18년간 3154삼진 ‘마운드 지배자’

입력 | 2015-02-12 06:40:00


3. 페드로 마르티네스

메이저리그 선수는 두 가지 꿈을 지니고 있다. 현역 시절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는 것과 은퇴 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오르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들만이 오를 수 있는 명예의 전당. 올해는 랜디 존슨, 존 스몰츠, 페드로 마르티네스, 크레이그 비지오 등 4명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4명이 동시에 입회한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스포츠동아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과 뛰어난 실력으로 올해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한 스타플레이어들의 발자취를 4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1994년 몬트리올 이적하면서부터 진면목
직구·체인지업·커브·슬라이더 완벽 제구
219승100패·사이영상 3회 등 놀라운 업적
1999·2000년엔 이닝당출루허용 0.83뿐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지만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친형 라몬 마르티네스가 이루지 못한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외계인’이란 닉네임에 걸맞게 91.1%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입회 자격 첫해에 쿠퍼스타운으로 향했다. 18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219승100패(방어율 2.93)에 3154삼진. 사이영상 3차례(1997·1999·2000년), 월드시리즈 우승(2004년), 투수 트리플크라운(1999년), 올스타전 8회 출전, 올스타전 MVP(1999년), 방어율 1위 5차례, 아메리칸리그(이하 AL) 다승 1위(1999년), AL 삼진왕 3차례 등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다.

그의 공식 프로필을 보면 투수로는 비교적 단신인 180cm에 몸무게 77kg이 적혀 있다.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상대 타자를 상대로 ‘싸움닭’으로 변하는 그는 직구,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4가지 구종을 모두 완벽하게 구사한 마운드의 지배자였다.

● 페드로의 저주

3살 위의 친형 라몬에 이어 마르티네스는 1988년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1992년 빅리그에 입성한 그는 주로 구원투수로 활약했다. 당시 토미 라소다 감독은 왜소한 체격의 마르티네스가 선발로 뛰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셋업맨으로 뛴 1993년에는 10승5패(방어율 2.61)를 기록하며 실력을 뽐냈지만 이듬해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됐다. 절대 마르티네스를 트레이드하지 않겠다던 방침과는 달리 2루수 딜라이노 디실즈를 영입하기 위해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한 것. 하지만 디실즈는 다저스로 이적한 후 세 시즌 동안 거둔 최고 타율이 0.256에 불과할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반면 엑스포스에서 선발로 전향한 마르티네스는 4년 동안 55승33패를 기록하며 빅리그 최고의 투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1997년에는 17승에 방어율 1.90의 놀라운 성적을 올려 생애 첫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다.

다저스는 1946년부터 1990년까지 내셔널리그 우승을 15차례나 차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는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했다. 만약 마르티네스 형제가 원투펀치를 이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공교롭게도 마르티네스가 떠난 이후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 괴짜 기질

그 어느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지녔지만 마르티네스의 이력에는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게임이 없다. 엑스포스로 이적한 첫해인 1994년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마르티네스는 7회 1사까지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레즈의 강타자 레지 샌더스를 고의로 맞혀 퍼펙트게임 기록을 스스로 날려 버렸다. 이듬해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9회까지 27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퍼펙트게임을 펼쳤다. 그러나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돌입한 연장 10회에 안타를 허용해 위업을 아쉽게 놓쳤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이던 1999년 AL 디비전시리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1차전에서 마르티네스는 허리 부상을 당했다.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두 팀의 대결은 난타전으로 이어졌다. 최종 5차전에서도 4회까지 8-8로 동점을 이루자 마르티네스가 구원투수로 깜짝 등판했다.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한 마르티네스는 직구와 체인지업의 제구가 되지 않자 오로지 커브만을 던지면서도 6이닝 무실점으로 인디언스 강타선을 틀어막아 팀의 12-8 승리를 이끌었다.

2003년 뉴욕 양키스와의 AL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마르티네스는 부진한 경기를 펼쳤다. 2회부터 4회까지 1점씩을 허용한 그는 카림 가르시아의 어깨를 향해 빈볼을 던졌다. 이어진 이닝에서 양키스의 선발 로저 클레멘스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매니 라미레스를 맞히자 결국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분을 참지 못한 양키스의 돈 지머 벤치 코치가 마르티네스를 향해 돌진했다. 당시 지머 코치가 72살의 고령이었지만 마르티네스는 인정사정없이 그를 땅바닥으로 패대기를 쳐버렸다.

● 제구가 뛰어난 삼진왕

홈구장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1999년 올스타전에서 마르티네스는 2이닝 동안 삼진을 5개나 잡아내며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배리 라킨, 래리 워커, 새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 제프 배그웰 등 내셔널리그를 호령하던 쟁쟁한 타자들이 마르티네스에게 속절없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99년과 2000년의 성적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430이닝 동안 허용한 안타는 288개에 불과했다. 삼진을 597개나 잡는 동안 볼넷 허용은 69개에 그쳐 이닝당출루허용수 0.83을 기록했다. 41승(10패)을 수확했고 방어율 1.90을 찍은 마르티네스는 사이영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뉴욕 메츠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2007년에는 탈삼진 3000개를 돌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중남미 선수로는 최초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볼넷을 701개만 허용했다는 점이다. 삼진 3000개를 돌파하며 1000개 이하의 볼넷을 내준 것은 퍼거슨 젠킨스, 그렉 매덕스, 커트 실링에 이어 마르티네스가 역대 4번째였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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