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어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2심 유죄를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미 확인된 사이버 사령부의 대선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및 악용을 함께 종합해보면 국가기관들의 전방위적 대선 개입이 확인됐다”며 “이명박 정부의 일이지만 박 대통령도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과 법정 구속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는 문 대표의 심정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1469만 표, 48%의 득표율을 올린 그로서는 새삼 아쉽고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심은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을 유죄라고 판단했고 1심은 무죄라는 엇갈린 판결을 한 만큼, 최종 판단은 대법원의 몫임을 법률가 출신인 문 대표가 더 잘 알 것이다.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국정원의 내부 지침을 놓고 1심은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명확히 지시한 것’으로 해석한 반면 2심은 ‘선거 운동을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하라’는 의미라며 정반대로 해석했다. 2심 유죄 판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국정원 직원 김모 씨의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에 대해서도 1심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없을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은 예외적인 증거능력까지 폭넓게 인정해 논란이 이는 상태다.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유죄판결이 확정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할 일인지도 의문이다. 당시 박 후보 측과 ‘원세훈의 국정원’이 공모해 선거에 개입했거나 사전에 알았다면 모를까,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의 불법행위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묻는 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패장(敗將)이 대선 결과에 계속 시비를 걸고 분열을 부추기는 태도는 ‘통합’을 내건 정치적 진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