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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형평성의 조화 추구… 교육 승자독식 구조 깨야”

입력 | 2015-02-12 03:00:00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제4심포지엄: 무한경쟁에서 개성 존중의 시대로
인촌기념회-동아일보-채널A-고려대 공동주최

교육개혁, 실현 가능한 대안은…




《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깊고도 넓다. 인촌기념회,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1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마지막 심포지엄은 교육개혁을 논의했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우리 교육을 더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었다. 》  
▼ 기조강연… 21세기 한국, 교육에서 길을 찾자 ▼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
교육문제 사회적 대타협 필요… 정권 초월한 독립기구 만들자

교육 개혁은 일관성 있게 장기적으로, 점진적 균형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한다. 수월성과 형평성은 대립이나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사회투자국가’ 개념을 도입해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형평성을 조화시켜야 한다. 교육의 큰 방향은 경쟁과 상생의 조화다. 유·초등은 인성교육에, 중고교는 창의적 지식교육에, 대학은 수월성교육에 무게를 둬야 한다.

학교교육 시기는 지나치게 길어 과잉투자하고 있으며 고용 시기는 너무 짧고 불안정하다. 퇴직 후 시기는 길어지는데 노후 준비는 미흡하다. 평생학습 지원체제를 구축해 재교육 기회를 늘리고, 유연안정성 정책(유연한 노동시장+적극적 노동정책+믿을 만한 사회보장)을 도입해야 한다.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지위 경쟁’ 때문에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성화교육 중심대학을 육성해 명문대 중심의 승자 독식 구조를 깨고, 전문계 고교-전문대-중소기업의 경로를 정책적으로 우대해야 한다.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초당파 인사로 구성한 ‘미래한국교육위원회’(가칭)를 제안한다. 한 정권의 수명을 넘겨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기간은 7년이 좋다.  
▼ 제1주제… 어떤 인재와 인간이 필요한가 ▼

한용진 고려대 교수
‘재주-德 아우른 멋있는 사람’ 육성… 21세기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


교육 문제의 상당수는 전통사회의 교육이념, 교육방법, 교육적 인간상이 근대 이후 급변한 데서 비롯한다. 교육은 시공을 초월해 필요한 ‘보편적 인간’과 특정 시공에 최적화된 ‘맞춤형 인간’을 길러왔다. 인간은 수동적으로 ‘교육받는 인간’과 스스로가 학습하는 ‘교육하는 인간’으로 나눌 수 있다.

세계화와 지식정보시대를 맞아 교육은 새로운 인재와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 근대 이후 국가주의, 시장주의 교육은 국가나 기업 발전의 도구로 써 ‘맞춤형 인간’ ‘교육받는 인간’을 길러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공생주의 교육관에 입각해 도덕적 공감 능력과 논리적 이성, 영적 혜안을 두루 갖춘 전인(全人)이 필요하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먹는 것과 종족 번식에 충실한 동물적 단계의 ‘생존지향인’,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단계의 ‘생활지향인’을 거쳐 자아실현에 도전하는 도덕적 단계의 ‘실존지향인’을 지향한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인간상으로 ‘재주와 덕을 아우른 멋있는 사람’을 제안한다. 선(線), 면(面), 입체의 삶을 넘어선 둥근 공과 같은 존재다. ‘멋있는 사람’은 각자의 직업에 충실하며, 절제의 미덕을 갖추고, 부당함에는 저항하며,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 제2주제… 평가와 선발제도, 바꾸어야 한다 ▼

성태제 이화여대 교수
내신, 시험보다 수행평가 늘리고… 수능, EBS연계비율 50% 이하로

우리나라의 교육평가는 객관성과 편리성에 매몰돼 평가를 위한 평가, 선발을 위한 평가로 전락했다.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종합적,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속히 바꾸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업적성검사인지 학업성취도검사인지 성격을 분명히 하고, 출제 과목은 줄여야 하며,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교육방송(EBS) 교재 연계비율은 50% 이하로 낮춰야 한다. 대학 신입생 선발은 획일적 고교평준화 탈피와 공교육의 질 향상, 사교육 근절은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통제와 규제를 철폐하고 사립대에는 자율권을 줘야 한다. 대학은 대학 특성에 맞는 선발제도를 강구하되 선발 절차와 기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성, 공평성,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고교내신제도는 경쟁 완화를 위해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시험위주 평가보다 수행평가를 확대하며, 학과 성적 이외의 특별활동과 대외활동을 평가해 기록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반고와 자율고, 과학고, 외국어고, 특성화고 등은 설립 목적에 맞는 평가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학교생활기록부를 분석해 입학전형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국가교육위원회’(가칭)의 설립을 제안한다.  
▼ 제3주제… 시민교육,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

송호근 서울대 교수

논쟁과 협의로 사회갈등 해소… 시민민주주의 교육 제도화해야

사익과 공익, 개인과 사회, 세대와 세대, 중앙과 지방, 국가와 국민 등의 갈등을 풀려면 자율성을 앞세우면서도 공(公)개념을 체화한 성숙한 시민이 필요하다. 시민은 견제와 투쟁, 절제와 양보, 논쟁과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서구는 시민사회를 거쳐 국가로 나아갔으나 우리는 곧바로 국가와 국민시대를 맞았다. 조선이 해체된 이후에도 일제강점기와 전쟁, 군부독재와 성장지상주의를 거치며 우리는 시민사회를 육성할 기회를 잃었다.

시민사회는 계약으로 맺어진 개인들, 전통적 이해관계(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난 개인들, 공익의 중요성에 눈뜬 개인들을 전제로 한다. 시민은 사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타인의 이익을 존중한다, 이게 시민성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최선의 시대가치는 시민민주주의다.

시민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 참여,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시민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 공익·타인·공동체를 존중하는 시민윤리다. 이를 가르치는 게 시민교육이다. 시민교육 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시민교육을 제도화해 법적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하며, 시민들의 자발적 교육 참여를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아직 국민의 시대를 살고 있다.  
▼ 종합토론… 선행학습금지法 실효성 있나 ▼

“학교 선행규제 사교육만 키워” vs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출발점”


심포지엄에서는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민감한 교육쟁점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가장 첨예하게 부딪친 주제는 ‘선행학습금지법’. 일선 학교 현장을 대변한 김창동 서울 양정고 교장은 “이 법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학교 현장에서는 이 법을 ‘사교육활성화법’도 아니고 ‘사교육왕성화법’으로 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선행학습금지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출발점에 불과하다”면서도 “정상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교과과정이 있는데 이를 앞질러 가르쳐 온 현실 자체가 비정상”이라고 반박했다.

과열 경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윤 대표는 “절대평가가 흠결 없는 완전한 방식은 아니지만 줄 세우기 상대평가보다는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반면 사회자인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은 “모든 학부모와 고교는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려는 욕망이 있다”며 “절대평가의 부작용을 막을 장치가 없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신 부풀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대학은 점점 내신을 반영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 전 장관은 “교육정책은 생물 같아서 인간의 욕망과 얽히면 원래 취지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 쉽다”고 했다.

현재의 교육 병폐를 치유하려면 대학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민경찬 연세대 교수는 “근본적으로 대학이 학과 특성화를 통해 대학 서열화 문제를 풀어야 대입에서 과열 경쟁 문제도 풀리고 고교 교육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은 “한국의 명문대는 일종의 특권층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깊게 의식해야 한다”며 “가령 서울대가 입시제도 개혁을 시작한다면 다른 대학도 따라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대학에 학생 선발과 재정 운용의 자율권을 충분히 주되 그에 따른 사회적 책무를 지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성태제 이화여대 교수는 “사립대에 학생 선발 자율권을 주고, 입시 과정에서 비리가 불거지면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문제를 풀려면 교육을 둘러싼 사회 각 분야를 함께 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안 전 장관은 “선진국에서는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고 고교만 졸업해도 살아갈 방법이 많고 삶도 엇비슷한 수준으로 보장된다. 이런 변화가 함께 있어야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용진 고려대 교수는 “다양한 여러 분야에서 해결책이 함께 나와야지 대학 고교 교사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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