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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법인세가 언제 성역이었나?

입력 | 2015-02-12 03:00:00


신연수 논설위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근 복지·증세 논란과 관련해 “법인세도 성역이 아니다”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나는 오히려 법인세 인상이 “성역” 운운할 정도로 금기사항인지 의아스럽다. 정부 여당은 대통령의 경제활성화 방침에 역행한다고 금기시하는 모양인데 정말 그런가는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나라지만 법인세 최고세율이 35%다. 한국의 22%보다 무려 13%포인트나 높다. 최근 28%로 내릴 움직임을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보단 훨씬 높다. 법인세 조금 높인다고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한다면 미국 일본 독일은 벌써 기업들이 다 빠져나갔어야 한다. 비과세 감면을 제외한 법인세 실효세율이 한국은 16% 선인데 미국은 26%, 일본은 38%, 독일은 29.5%나 된다.

법인세는 기업 활동에 중요한 요소지만 절대적이거나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내가 아는 기업인은 “차라리 법인세율을 좀 높이고, 경찰서 소방서의 ‘갑질’이나 불투명한 관행을 없애주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에선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법인세는 기업 이익에 매기는 것이므로 그만큼 기업 이익이 많고 가계소득은 적다는 의미도 된다.

사내 유보금에 과세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시행되자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주주 배당금을 지난해 6조 원에서 올해 10조 원으로 크게 늘렸다. 대기업 지분의 절반은 외국인 주주가 갖고 있다. 기업이 이왕 돈을 쓸 바에야 배당보다 법인세를 더 내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게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성역’을 만드니 정책이 꼬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실제 법인세를 성역으로 지킨 것도 아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말했듯이 정부는 슬금슬금 기업에 대한 세금을 올렸다. 대기업 최저세율을 17%로 높이고 비과세 감면을 줄여 올해 5000억 원을 증세했다. 기업들은 대놓고 반발을 못하기에 근로자 연말정산 같은 파동 없이 조용히 지나갔을 뿐이다.

오히려 지금 성역이 된 것은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다. 무상보육은 한 해 10조 원이 들지만 출산율 제고에 효과 없음이 증명됐다. 2조6000억 원이 드는 무상급식은 품질이 낮아 버려지는 음식이 많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무상보육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야당은 ‘보편적 복지’라는 이념에 갇혀 두 복지를 성역처럼 여기고 있다.

한국은 복지를 늘려야 하지만 더 시급한 복지가 많다. 복지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나 실업(失業), 장애 등으로 혼자 설 수 없는 사람, 가정이 어려워 사회가 돌봐줘야 하는 어린이나 노인에게 긴요한 것이다. 실업자에 대한 수당과 재교육이 형편없으니 ‘쌍용차 사태’가 일어나고, 기업은 감원(減員)을 꼭 해야 할 때도 못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복지를 늘리려면 우선 이런 사람들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

‘한 달에 22만 원 주면 좋고 안 줘도 그만’인 고소득 가정에 보육비를 주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된다. 세계에서 가장 복지가 발달한 스웨덴과 프랑스도 재정적자를 견디다 못해 상위 20∼30%는 제외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복지 후발 주자인 한국은 처음부터 주머니 사정을 봐가며 지혜로운 복지, 스마트한 복지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

법인세는 성역이 아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도 성역이 될 수 없다. 기초연금 무상보육 무상급식 3개 복지에 들어가는 예산만 지난해 22조 원에서 2017년 30조 원으로 늘어난다. 복지는 물론이고 정부 지출 전반을 구조조정해야 지속가능하다. 법인세를 포함한 증세와 무상보육 무상급식을 포함한 복지 구조조정은 같이 논의해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