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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실 제조기술 200년만에 복원

입력 | 2015-02-12 03:00:00

한국전통문화대 4년 연구 결실




금실 복원 시연자들이 2인 1조로 옷감 위에 문양을 짜는 전통 수공 문직기를 이용해 금실과 명주실을 엮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11일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 작업실. 길이 6m, 높이 4m에 이르는 대형 베틀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한 명칭은 전통 수공 ‘문직기(紋織機·옷감 위에 문양을 짜는 베틀)’.

2인 1조로 구성돼 금실(金絲·금사)과 명주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무늬를 만드는 기구다. 시연에 나선 여학생이 줄이 꼬이지 않도록 얇은 금실을 나무 막대기에 걸어 두 겹의 명주실 사이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바디를 힘차게 당겨 문양을 짜서 넣었다. 옆에서 보니 남색 명주 천에 앙증맞은 원앙새가 화려한 금빛을 뽐내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단절된 금실 제조기술이 200여 년 만에 복원됐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는 4년의 연구 끝에 전통기법으로 금실을 만들어 옷감에 문양을 새기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는 전통 제조기법을 잃어버린 채 공장에서 투명필름에 금가루를 입히는 방식으로 금실을 생산했다.

금실은 전통 한지 위에 얇은 금박을 두 겹으로 붙인 뒤 끝이 둥근 전통 칼로 썰어내 만든다. 두께가 2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에 불과한 금박이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한지와 금박을 아교 성분의 접착제로 바른 뒤 한두 달 동안 서서히 말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금실이 사용된 기록은 삼국시대인 신라 진덕여왕 7년(서기 65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금실이 쓰인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온양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302년 아미타불상 불복장(佛腹藏·불상 안에 사리 등을 집어넣는 것) 직물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계승된 금실 전통 제조기법이 우리나라에서 단절된 시기는 영조 9년(1733년). 값비싼 금실을 만드느라 자원이 낭비되고 사치가 만연한다는 이유로 영조가 문직기 자체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영조 이후에도 간간이 각종 직물에 금실이 쓰였지만 제조방식은 서서히 잊혀 갔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전통기술 복원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한중일 3국의 고문헌 111권을 참고하고, 금실을 쓴 국내외 유물 68점을 정밀 조사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개발한 전통 문직기를 사용해 고려시대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1346년)의 불복장 직물인 ‘남색원앙문직금릉(藍色鴛鴦紋織金綾·보물 제1572호)’을 복원해 냈다. 모든 공정이 수동이다 보니 과정은 지난했다. 불과 3cm의 무늬를 짜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1m짜리 남색원앙문직금릉을 복원하는 데 밤샘 작업 끝에 꼬박 한 달 반이 소요됐다.

연구팀을 이끈 심연옥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이번 복원 기술은 수백 점에 달하는 우리나라 금실 직물 문화재를 전통방식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부여=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