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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필체 하나는 좋더라고.”
뜬금없이 편지 얘기부터 꺼냈다. 한화 새 외국인선수 나이저 모건(35)에 대해 묻자 한화 김성근(73) 감독은 껄껄 웃으며 “그 친구, 한국으로 가기 나한테 편지를 써서 주고 가더라”며 일화를 들려줬다.
모건은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일, 김 감독의 지시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도 높은 고치 훈련을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충남 서산에 있는 2군 훈련장에서 이정훈 2군 감독의 지도 하에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김 감독은 “모건이 ‘팀에게 피해를 끼쳐 미안하게 됐다’면서 장황하게 편지를 써서 주더라. 그런데 깜짝 놀랐다. 영어로 편지를 썼는데 필체가 아주 좋더라. 필체만 보면 심성이 아주 고운 친구 같다”며 웃더니 “그렇지만 필체만 좋으면 뭐하냐. 필체만큼 야구도 잘 해야지”라며 혀를 찼다.
공과 사를 얼음처럼 냉정하게 구분하는 김 감독의 마음을 편지 하나로 돌릴 수 없는 없는 법. 김 감독은 “편지 내용을 보니 본인은 스스로 나름대로 훈련을 하고 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전혀 아니었다. 미국과 여기 시차가 있다고 해도, 보면 안다. 여기서 도저히 훈련을 따라올 몸이 아니었다. 완전히 놀다 온 것 같았다. 그동안 나도 감독 생활하면서 수많은 용병들을 만났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훈련 안 한 몸으로 스프링캠프에 온 용병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성근 감독을 포함한 한화 1군은 15일 오키나와로 떠나고, 2군선수들이 그날 고치로 들어와 연습경기와 훈련을 할 예정이다. 이번에 모건은 이정훈 2군 감독과 함께 고치로 들어오게 된다. 매일 이정훈 감독이 전화로 김 감독에게 모건의 몸상태와 훈련내용 등을 보고하는데, 현재 수비와 주루플레이는 많이 좋아진 상태. 김 감독이 전화로 서산에 있는 이 감독에게 “몸쪽 변화구를 던져보라”며 직접 지시를 할 정도로 타격 컨디션을 체크해왔다.
김 감독은 “정 안 되면 고치에도 못 오게 하고 서산에서 계속 몸 만들려고 했는데 이정훈 감독이 고치에 올 정도는 됐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또 한번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렇다면 모건은 고치에서 조만간 오키나와로도 넘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그건 알 수 없지. 여기서 컨디션이 올라오면 오키나와로 부를 것이고, 아니면 여기 계속 훈련하게 남겨둬야지”라며 다시 한번 냉정하게 말했다. 다른 잣대는 없다. 오로지 몸상태와 컨디션만 보고 판단할 뿐이라는 뜻이었다.
고치(일본)|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