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분석… 한국인 뭘 먹고 뭘 살까
한국의 직장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점심은 뭘까. 정답은 가격 부담도 적고 주문 즉시 나오는 ‘백반’이다. 점심 메뉴에서도 직장인들의 팍팍한 삶이 엿보이는 듯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촬영 협조 큰기와집
13일 동아일보가 한국정보화진흥원(NIA),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서울 은평구 대조동, 서초구 반포동,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서구, 성남시 수정구 등 4개 지역의 700여 개 유통업체에서 얻은 ‘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 이후 서민층 민생 경기가 바닥을 쳤을 때도 부유층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소득층의 경우 경기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경기 하강 속도보다 소비 감소 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한국 사회는 계층 간 소득 차가 더욱 벌어져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조사에서 강추위가 찾아오면 당면 판매량이 오른다는 뜻밖의 결과도 나왔다. 여름엔 야외 활동이 크게 늘면서 쌈장 매출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빅 데이터를 통해 본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우리 입맛엔 백반” 26%로 1위… 60대는 일식이 2위 ▼
빅데이터로 본 한국인 - 점심 뭐 먹지?
외근이 잦은 상사맨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이들의 점심식사가 궁금해서였다. 당장 전날 점심 메뉴부터 물었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7명 중 이 팀장을 포함한 4명이 “설렁탕”이라고 답했다. 짜장면과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는 직원도 1명씩 있었다. 유일한 여성인 양미경 씨(35)는 죽을 먹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한식이 많았다.
한식 > 분식 > 양식 > 중식
음식점을 11개 카테고리로 분류한 결과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은 역시 한식이었다. 한식 매출액 비율은 무려 35.5%로 2위 분식(18.1%), 3위 양식(13.7%)을 여유 있게 제쳤다. 중식과 일식이 각각 9.2%, 6.5%로 4, 5위에 올랐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봐도 1∼5위 순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비율 측면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한식과 중식은 남성이 상대적으로 더 선호했다. 분식과 양식은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좋았다.
개별 메뉴로 나눠 보면 한식 중에서도 백반(26.2%)이 전체 81개 메뉴 중 가장 인기였다. 분식(14.9%)과 중국음식(9.2%)이 뒤를 이었다. 경양식(9.0%) 일식(5.9%) 제과·제빵(3.5%) 냉면(2.7%) 패밀리 레스토랑(2.0%) 뷔페(2.0%) 닭요리(1.9%)가 ‘톱 10’에 들었다.
강남은 경양식, 을지로는 냉면
이번 분석 대상인 강남구 영등포구 중구는 직장인이 많은 곳이다. 강남구 테헤란로, 영등포구 여의도, 중구 을지로와 명동 인근에는 수천 명씩 근무하는 대기업 건물이 즐비하다. 재미난 것은 지역별로도 점심 메뉴 선호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강남구에선 경양식이 인기다. 강남구 전체 매출액 중 11.6%가 경양식 전문점에서 나왔다. 영등포구와 중구에선 같은 메뉴의 매출액 비율이 각각 4.9%, 5.0%에 그쳤다. 영등포구의 경우 중국음식점 비율이 11.7%로 다른 구보다 3∼4%포인트 정도 높았다. 특히 닭요리 전문점이 3.7%로 5위에 올랐다. 오래된 음식점이 많은 중구에서는 냉면 전문점(7.7%)의 인기가 강남구(1.1%)나 영등포구(1.9%)에 비해 훨씬 높았다.
서울 중구 무교로는 오전 11시 반만 되면 직장인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샐러리맨들은 10∼20분 만에 후딱 점심을 해치우곤 남은 시간 동안 휴식을 만끽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실제 SK플래닛이 지난해 3∼8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카페, 블로그, 게시판 등에 올라온 ‘점심’ 관련 글 48만8002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런 경향이 엿보인다. 물론 메뉴를 언급한 건수가 10만1274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누구와’에 해당하는 글이 5만1598건으로 ‘어디서’(4만1594건)나 ‘언제’(3만9140건)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체중조절이나 운동 등 다이어트와 관련한 언급도 2만7951건으로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오늘 또 부대찌개가 나왔다…”
대학 구내식당의 아침 점심 저녁을 통틀어서 가장 자주 나온 것은 육개장이었다. 육개장은 총 2249회나 나왔다. 육개장은 월∼토요일 모두 ‘톱3’에 들었다. ‘점심 1위’에 오른 부대찌개는 총 1932회로 2위였다.
반면 여대 메뉴의 경우 일반 대학 메뉴 순위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화여대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뉴는 ‘스파게티’ ‘돈가스’ ‘치킨마요덮밥’ 등이었다. ‘육류’ 관련 메뉴는 여대에서도 인기였다. 성신여대 동덕여대 숙명여대 등 6개 여대 메뉴를 분석한 결과 ‘제육볶음’ ‘삼겹김치볶음’ ‘우불고기볶음’ ‘돈육장조림’ 등이 인기 메뉴로 나타났다.
:: 빅 데이터(Big Data) ::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말한다. 과거에는 이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다양한 방식의 분석이 가능해졌다. 빅 데이터 분석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해당 사회의 성격을 정의하려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려는 기업들도 널리 활용하고 있다.
▼ 영하10도 눈 내리는 날… 커피-술보다 □□ 더 샀다 ▼
빅데이터로 본 한국인 - 마트선 뭘 살까?
흰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은 무엇일까. 몸을 녹여줄 따듯한 커피 혹은 코코아일까. 아니면 소주나 위스키처럼 독한 술일까. 둘 다 틀렸다. 정답은 ‘①○○’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어떤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릴까. 당연히 아이스크림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제품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②○○’다. 시원한 음료수나 맥주보다 더 많이 팔린다. 이것이 없는 피서지를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정보화진흥원(NIA) 빅데이터전략센터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분석한 ‘유통시장 상품판매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온도·지역별 특성·연령 등에 따라 인기 상품의 종류가 차이를 보였다. ①○○와 ②○○처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들도 상당수였다. 정답은 다음 단락에 나온다.
음식료품 판매량은 일상과 밀접히 연관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료품은 당면이다. 겨울철 보양음식으로 꼽히는 곰탕이나 설렁탕에 당면이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겨울 별미 음식으로 빠질 수 없는 만두의 주재료도 당면이다. 당면은 기온이 영상 5도 이상일 때는 판매 순위 10위권 밖에서 머물다 0도∼영상 5도에서 6위, 0도∼영하 5도에서는 5위로 점차 상승했다. 영하 5∼10도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영상 25도가 넘는 더위에는 아이스크림이 단연 1위였다. 영상 15도를 넘어갈 경우 인기 상품 대부분은 아이스크림, 차, 커피 등이 차지했다. 하지만 유독 쌈장만은 예외였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순위가 올랐던 겨울철 당면처럼 날씨가 더워질수록 쌈장의 순위는 높아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음식료품 판매량은 생활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온도”라며 “여름철 야외활동 중 고기를 구워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쌈장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일반국수, 설탕, 식초 판매량도 급증했다.
지역적 특성과 사회적 이슈도 영향
슈퍼마켓 매출데이터를 지역별 공시지가 및 소득 수준에 따라 분석한 결과 부유층 및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인기 상품도 크게 차이가 났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등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서는 홍삼액이나 영양제 등 ‘건강식품’이 가장 많이 팔렸다. 2위는 음료 및 주류였다. 그중에서도 ‘와인’이 최고 인기 상품이었다. 3위는 김치류였다. 부유층일수록 김치를 소량으로 사서 먹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 은평구 등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분유 등 유아식’이었다. 신혼부부나 영유아를 키우는 젊은 세대가 주로 거주하기 때문이다. 2위를 차지한 것도 아이들이 주로 찾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민속주류가 3위였다. 커피믹스, 소주 맥주 등 주류, 아이스크림, 껌 등은 사회적 스트레스에 민감성이 높은 상품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4주간 전국 매출을 2012년, 2013년 같은 기간 매출과 비교해 분석했을 때 매출 하락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일상용품 판매율은 지역이나 소득, 기온 등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인터넷으로 공개
이번 빅데이터 분석은 23개 유통사의 납품매장 700여 곳을 대상으로 했다.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약 4년 6개월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했다. 바코드가 새겨진 제품 18만여 개가 대상이었다. 소득 수준, 인구 분포, 지역적 특성 등도 함께 분석했다.
그동안 영세 슈퍼는 시즌별 상품 준비를 담당 직원의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진입장벽이 낮아 창업이 어렵지는 않지만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폐업 역시 빈번했다. NIA 빅데이터전략센터 신신애 부장은 “영세 슈퍼의 경우 간단하고 직관적인 판매 정보를 원하지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올해 상반기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14일은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다. 밸런타인데이에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역시 초콜릿류, 유가공품, 음료 및 주류였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밸런타인데이에만 판매가 급증한 상품이 있었다. 바로 헤어스프레이, 왁스 등 헤어용품이었다. 초콜릿을 받으러 나가는데 준비 없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정답 : 당면
김창덕 drake007@donga.com·서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