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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 1주년… 故 박주현씨 아버지 ‘고통의 시간’

입력 | 2015-02-16 03:00:00

“딸도 눈물만 짓는 아빠를 원치않을것”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 1주년(17일)을 앞둔 13일 당시 사고로 숨진 박주현 씨의 아버지 박규생 씨가 평소 읽던 책에서 겨 적은 한자어 ‘평상심’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이날 부산 금정구 부산외국어대에서 열린 추모식 현장. 울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부산외국어대 제공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제 딸은 모든 걸 용서할 겁니다”

지난해 2월 20일 부산 남구 천주교 이기대성당에서 열린 박주현 씨(당시 19세)의 장례식 당시 아버지 박규생 씨(53)는 조문객을 위로하고 있었다. 사흘 전 딸은 경북 경주시 마우나리조트에서 열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가 체육관 붕괴 사고로 숨졌다. 이 사고로 주현 씨를 비롯해 부산외국어대 학생 9명(신입생 4명)과 이벤트 회사 직원 1명이 숨지는 등 2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박 씨는 딸의 1주기를 앞둔 13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고통스러웠던 지난 1년을 털어놨다. 울산대 교직원(예산부처장)인 그를 만난 날 공교롭게도 울산대 졸업식이 열렸다. 그는 학교 행사가 열릴 때마다 먼저 떠난 둘째 딸 기억에 더욱 가슴 아프다고 했다.

박 씨의 사무실에는 작은 화이트보드가 있다. 그곳에는 ‘生而不有(생이불유·만들었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를 삶의 원리로’, ‘내 탓 네 德(덕)’ 등의 글귀가 두서없이 적혀 있다. 그는 “책을 읽다가 와 닿는 글귀를 옮겨 놨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읽는다”고 했다. 창가에는 딸의 사진과 기도를 위한 작은 향초가 놓여져 있었다.

사고 이후 박 씨는 매달 7, 8권의 책을 읽는다. 자전거 타는 취미도 만들어 지난해 10월에는 3박 4일간 서울∼부산을 완주했다. 평소 즐기던 등산은 더 자주 했다. 주변에서 “그런 큰일을 당한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해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슬픔을 이겨 내려는 그 나름의 방법이었다. 박 씨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토록 힘든 줄 알았다면 애초에 가정을 꾸리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칼로 가슴을 베이는 것 같이 마음이 쓰라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도 보고 싶은 딸을 위해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씨는 딸의 장례 직후 “형편이 어렵거나 몸이 불편한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부산외국어대와 딸이 다닌 고등학교, 성당 등 3곳에 각각 1004만 원을 기부했다. 부산외국어대에서 돌려받은 등록금과 입학금은 고아들을 돌보는 한 수녀원에 전달했다. 사고 당시엔 경찰과 리조트 건설사인 코오롱 측에 “사고 관계자를 선처해 달라”며 탄원서까지 냈다. 원망과 분노보다는 ‘용서’를 선택한 것.

박 씨를 만난 날 부산 금정구 부산외국어대에서도 졸업식과 함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1년간 이 대학 학생 500여 명이 부상 후유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를 받았다. 중상을 입은 학생 5명 가운데 2명은 지난해 2학기 학교로 돌아왔지만 3명은 아직도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대학 측은 다음 달 캠퍼스에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 정해린 부산외국어대 총장은 “모든 학생이 아픔을 이겨 내고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울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