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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전자업계 간판기업, 무엇이 성패 갈랐나

입력 | 2015-02-16 03:00:00

RadioShack, 변화 거부한 ‘아날로그의 몰락’
1980년대 美전역 7000개 매장…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방식 영업
가격-서비스 뒤져… 결국 파산신청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제품 소매업체인 ‘라디오섁’의 한 매장이 점포 정리를 앞두고 파격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라디오섁은 5일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사진 출처 Tidewater News

《 소니(Sony)와 라디오섁(RadioShack)은 몇 년 전까지 일본과 미국 전자업계의 간판 기업이었지만 지금 이들의 운명은 확연히 갈린다.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한 소니는 재기했고 구시대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라디오섁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무엇이 이들의 성패를 갈랐을까. 》

94년 역사의 미국 대표 가전제품 소매업체 ‘라디오섁’이 5일 파산보호 신청을 하자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업체 몰락’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라디오섁이 실패한 이유로 ①현재의 덫이 된 과거의 영광 ②온라인 시대를 거부한 오만 ③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회사 이름 등을 꼽는다.

마케팅 전문가인 로린 드레이크 씨는 “이름이 모든 걸 말하는 세상이다. 라디오섁을 글자 그대로 풀면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에 귀 기울여 듣던 라디오를 파는 판잣집(shack)’이다. 이 이름이 과연 21세기에 어울리느냐”고 되물었다.

이름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많다. 온라인방송 스트리밍 선두업체인 넷플릭스(Netflix)는 DVD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사업으로 출발했다. 드레이크 씨는 “이 회사 이름을 ‘메일플릭스(Mailflix)’라고 지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했겠는가”라고 말했다. 애플 아마존 삼성 구글 버라이즌 등 잘나가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21세기에 알맞은 세련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섁은 최전성기인 1980년대 미국 전역에 7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했다. ‘우리 매장의 반경 5마일(약 8km) 안에 미국 국민의 90%가 삽니다’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소매판매 업체는 물론이고 대형 유통업체까지 오프라인 매장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와중에도 과거의 영광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라디오섁의 미국 내 매장은 5193개였다. 대표적 경쟁업체인 베스트바이는 1492개로 라디오섁 매장 수의 28.7%였다. 조 매그나카 라디오섁 최고경영자(CEO)조차 “우리 집 5마일 반경 안에도 매장이 8개나 있다. ‘같은 식구끼리 제 살 깎아먹기’를 하는 형국”이라고 개탄할 정도였다. 해마다 조금씩 줄였지만 현재 4000여 개의 매장을 유지 관리하는 비용은 라디오섁 경영에 커다란 부담이 됐다.

IT 전문가들은 “소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업체보다 가격이 싸거나 비슷한 가격이면 서비스가 뛰어나야 한다. 라디오섁은 이 핵심적 두 부문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자는 지난주 뉴욕 맨해튼 44가 인근에 있는 대형 전자유통업체 베스트바이와 라디오섁 매장을 잇달아 방문했는데 베스트바이가 대형 할인매장이라면 라디오섁은 동네슈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스트바이에 들어섰을 때에는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지만 라디오섁은 계산대 뒤에 여직원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베스트바이에서는 찾는 제품을 문의하니 “물건이 매장에 없다. 미안하다. 옆에 라디오섁 매장을 가보라”는 안내까지 받았지만 라디오섁 매장에서는 “저기 어디쯤에 있을 것 같으니 알아서 찾아보라”는 냉랭한 대접을 받았다. 결국 제품을 찾을 수가 없었고 비슷한 제품도 가격이 베스트바이보다 비쌌다. 결국 다시 베스트바이로 갔고 “꼭 맞는 제품이 아니라도 집에 가서 써보고 안 되면 언제든 반품이나 환불을 요청하라”는 설명을 듣고 제품을 구입했다.

10일 라디오섁 매장에 다시 가봤다. ‘점포 정리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때 여직원은 없었고 매장 매니저가 있었다. 근무 경력 10년 차라는 그는 “맨해튼 내의 모든 매장이 우리처럼 닫는 건 아니다. 통폐합된다고 보면 된다. 우리 회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계속 근무하고 싶은데 (내 미래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 SONY, 디지털로 변신 ‘워크맨의 부활’ ▼

노트북-부동산 팔고 TV는 분사… 스마트폰-게임기-센서 위주 재편
작년 9~12월 실적 7년만에 최대치


지난해 2월 일본 도쿄 긴자에서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4 발매 이벤트를 하는 모습. 세계 약 64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소니 게임기는 향후 소니의 성장을 이끌 주요 사업으로 꼽힌다. 아사히신문 제공

‘소니가 되돌아왔다.’

계기는 4일 발표된 3분기(지난해 9∼12월) 실적이었다. 영업이익 1783억 엔(약 1조6500억 원), 순이익 890억 엔으로 2007년 3분기 이래 최대 성적표였다. 소니는 연간 전망도 상향 조정했다. 2014 회계연도(지난해 4월∼올해 3월)의 영업이익을 200억 엔, 순손실을 1700억 엔으로 각각 추정했다. 지난해 10월에 밝혔던 전망치(영업이익 400억 엔 적자, 순손실 2300억 엔)보다 실적이 대폭 개선된 것이다. 시장은 즉각적으로 화답했다. 5일 소니 주가는 15.35% 급등한 3194엔으로 장을 마쳤다. 불과 2년여 전인 2012년 11월 소니 주가는 772엔까지 떨어졌었다. 잇따른 실적 부진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투기등급 부여로 휘청거리던 소니 주가가 2년여 만에 수직 반응한 것이다.

소니의 부활을 이끈 원동력은 ‘요시다 리더십’이다. 지난해 4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된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郞) 씨는 현재 소니의 구조개혁을 이끌고 있다. 그의 지휘 아래 소니는 한국, 중국, 대만 업체에 밀려 대규모로 이익을 깎아먹고 있는 가전사업 부문에 칼을 댔다. 노트북 브랜드인 바이오를 지난해 매각하고 TV 사업은 하부조직으로 세분한 후 분사시켰다. 자금 조달을 위해 부동산도 잇달아 팔았다. 소니 빌딩 11개가 밀집해 ‘소니 마을’로 불리던 도쿄(東京) 시나가와(品川) 구 고텐야마(御殿山)에는 현재 소니 소유 빌딩이 4개로 줄었다.

인적 구조조정도 계속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소니는 과거 10년간 약 3만3000명을 해고했다. 전체 인력의 20% 정도를 떼어낸 것이다. 조만간 스마트폰 사업 인력 1000명도 추가 감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경우 스마트폰 사업 인력은 전성기 때보다 약 30% 줄어든 5000명 체제가 된다.

부실을 떨어내니 몸집이 가벼워졌다.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요시다 CFO가 구조개혁에 솜씨를 발휘한 것이 소니의 업적회복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구조조정은 단기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장기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소니의 부활 전망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업구조 경쟁력에 있다. 2012년 4월 소니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스마트폰과 게임기, 이미지 센서를 3대 핵심사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스마트폰에서는 삼성과 애플에 밀려 고전하고 있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현재 성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4일 실적 발표에서 소니는 이미지 센서를 포함한 디바이스 부문에서만 무려 1000억 엔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 판매도 호조다. 소니는 이미지 센서, 스마트폰 배터리, 착용형(웨어러블) 기기 등 첨단부품 분야를 성장 동력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니의 부활’을 단언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LG경제연구소의 이지평 연구원은 “소니가 일부 사업에서 수익이 개선됐지만 ‘소니 부활’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하드웨어, 인터넷, 콘텐츠 등 소니가 가진 사업들이 융합 시너지를 낼 때 진정한 소니 부활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페섹 씨도 “소니가 실제로 부활하기 위해선 ‘제2의 워크맨’이라 부를 만한 혁신적 신제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