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기자
이날 월성 발굴 현장에서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사와 인부 100여 명이 곳곳에서 땅을 파고 흙을 퍼 나르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펜스만 쳐 있던 두 달 전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석빙고 앞을 중심으로 40cm 깊이의 구덩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죽 늘어서 있었다. 시굴에 들어간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옛 건물 터와 기와, 그릇 등이 상당수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데 발굴 현장 주변에서 흥미로운 얘기가 들렸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일본 교토대 교수가 최근 월성 현장을 둘러본 뒤 ‘혀를 찼다’는 것이다. 마치 군사작전을 치르듯 많은 인원을 투입해 발굴을 빠르게 진행한다는 얘기였다. 이마저도 느리다며 민간 기관까지 총 동원해 발굴 인원을 10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일제강점기 때 이뤄진 서봉총 발굴은 토사를 채취하려는 목적으로 봉분을 한꺼번에 들어내는 바람에 고분 축조 방식을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은 지자체와 지역여론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개발 규제로 경주시민들이 수십 년간 겪은 불편은 매우 컸다. 하지만 월성 발굴이 속도전으로 진행돼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입는다면 경주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발굴과 동시에 왕궁 터를 복원해 관광 자원화하려는 계획을 감안한다면 복원의 기초 자료가 될 발굴을 더 완벽하게 진행해야만 한다. 속도와 효율성이 적어도 문화 영역에서만은 최고의 원칙이 될 수 없다.
김상운 문화부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