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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교육개혁기구를 강력히 원하는 이유

입력 | 2015-02-16 03:00:00

본보 주최 교육심포지엄 교육개혁기구 설치 제안
고통과 좌절의 청춘들이 운다 교육의 퀀텀점프 위해 꼭 필요
정권 넘어선 활동 보장하고 여야합의로 위원 임명해
즉각적인 입법화로 도와주면 교육망국 그나마 늦출 수 있다




심규선 대기자

“울리는 휴대전화 속 문자 하나. 또 이별 통보다. 올해만 벌써 몇 번째인가. 입시를 위해 달려온 12년. 아르바이트, 학점 관리, 그리고 스펙 쌓기로 지새운 4년. 나와 맞는 이를 찾을 여유조차 없이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 언제쯤 면접관과의 ‘밀당’에서 승리해 회사와 연애할 수 있을까. 나는 또다시 다른 이에게 보여줄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D대 4학년)

“끝없이 노력하고 도전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취업에 대한 좌절감이 점차 분노로 변하고 있다. 본인들이 힘든 것은 몰라주고, 이런 사회를 만들어 놓은 우리의 선배이자 어른들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 수많은 연사들이 희망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했다. 이제 그런 어설픈 위로는 통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어느 샌가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I대 3학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다가오고 있다. 전공과목을 확인하는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번 한 학기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대학을 소위 ‘점수 맞춰서’ 들어온 케이스다. 문제는 나 같은 케이스가 흔하다는 것이다. 전공보다는 ‘학벌’을 더 중시했던 고등학교 교육에서 이런 처참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모순일지 모른다. …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한다. 더이상 나 같은 희생양을 만들지 말아달라고.”(H대 2학년)

대학생들의 글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그들은 출구가 없는 방에서 좌절 분노 무기력으로 고통받고 있다. 누가 그들을 ‘루저’로 만들었는가, 라는 질문은 책임 회피다. 우리 사회 전체가 ‘루저’다. 대학생들의 고통은 고교부터 잉태됐고, 고교는 대학의 갑질에 무기력하며, 대학은 승자독식이라는 사회의 룰을 그대로 복제하고, 사회는 ‘지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만 이용한다. 개인의 개성과 적성이 교육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교육이 기여해야 할 국가와 세계라는 존재도 잊혀진 지 한참 됐다. 뿌리와 가지는 몽땅 잘라버린 채, 오로지 휘어지고 썩은 줄기만을 끌어안고 우리는 오늘도 이를 교육이라고 숭배한다.

인촌기념회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지난주 ‘무한경쟁에서 개성존중의 시대로’라는 주제로 교육 심포지엄을 열었다.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은 교육 문제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미래한국교육위원회’(가칭)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도 대부분 공감했다.

대통령마다 교육개혁기구를 만들었다. 교육개혁심의회(전두환), 교육정책자문회의(노태우), 교육개혁위원회(김영삼), 새교육공동체위원회(김대중), 교육혁신위원회(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기능에 교육을 추가해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로 바꾸었으나 박근혜 정부는 교육을 빼고 원래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기구가 만능은 아니다. 정권이 끝나면 기구의 수명도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폭발 직전이다. 지금의 교육으로는 학생들의 고통을 절대로 줄여줄 수 없다.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미래’를 얘기하는 것은 위선이자 직무유기다. 박근혜 정부도 교육개혁을 얘기하고 있으나 대부분 현재의 거울로 현재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의 거울이 필요하다. 비전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비전은 장기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교육의 퀀텀점프를 위해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강력하게 힘을 실어줘야 할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다.

안 전 장관은 교육개혁기구가 특정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활동 기간을 7년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아예 기간을 9년으로 늘리고 3년 임기의 위원을 3분의 1씩(중임 가능) 바꿔나가면 더 좋을 것 같다. 위원도 대통령과 여당, 야당이 나눠먹기식으로 임명하지 말고 처음부터 여야당이 합의해 중립적인 인사를 선임했으면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이념대립과 진영논리를 막고 필요한 일은 곧바로 입법화해 실천할 수 있다. 말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실패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조차 못해 보는 것이다. 교육개혁기구의 가장 큰 동력은 ‘위기의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청춘이었던 자들이 어찌 청춘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가”(D대 3학년)라는 절규를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때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