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고 배려하는 마음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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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를 하기엔 너무 어려요.” ‘순둥이’ 지온이도 한복을 입고 낯선 환경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게 쉽진 않았다. 게다가 아빠 엄태웅에 따르면 “요즘엔 슬슬 자아가 생기고 있는 중”이라고. 그래서 새해 인사는 아빠에게 맡기고, 양 인형과 함께 좋아하는 빵을 먹기로 했다. 한복 협찬 : 박술녀한복.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설 명절을 앞두고 경기 성남시 정자동의 한 카페에서 엄태웅 부녀를 만났다. 지온이는 평소 사람을 잘 따르고 누구에게든 잘 웃어줘 ‘순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긴 팔다리는 발레리나인 엄마(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윤혜진)를 닮았지만 얼굴은 아빠의 어린 시절 판박이라고 한다. 엄태웅은 “아이를 키우면서 몰랐던 세상을 새롭게 알게 된 느낌”이라고 했다.
“원래 감성적이긴 한데, 지온이를 보면 유난히 울컥거린다. 아내의 임신 초기 심장 박동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가 자라는 순간순간 놀랍고 감격스러울 때가 많다. 키울수록 더한 거 같다. (차)태현이에게 얘기하니까 첫애라 그렇다는데, 어쨌든 정말 감사한 경험이다.”
―지온이가 방송에 잘 적응한 것 같다.
“아이가 낯가림이 없는 편이라 스태프들과 금세 친해졌다. 사실 방송 출연 결정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2박 3일 동안 오롯이 홀로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를 더 많이 알 수 있고, 더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출연하길 잘한 것 같다. 누나(엄정화)도 처음 지온이와 함께 예능에 나온다고 했을 땐 ‘배우인데 아빠 이미지가 너무 강해진다’면서 걱정했는데 이젠 좋은 추억거리가 생겼다며 좋아하더라. 방송 아니면 내가 아이 데리고 문화센터에 가서 다른 부모와 만날 기회가 있었겠나.”
―아버지가 된 후 변한 게 있다면?
“배려심이 생겼달까. 이전까지 나는 배우로서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늘 내 위주로 스케줄을 진행해서 아내가 불만이 많았는데, 아이 낳은 후에는 좀 변한 거 같다. 그리고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내가 지온이를 귀하게 생각하듯 어떤 사람이든 그 부모에겐 귀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쉽게 미워하거나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배우로서도 이제 아버지 역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다.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감정이 풍부해진 것 같다.”
“아버지가 내 100일 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나 롤 모델이 없다. 어린 시절 공중목욕탕에 가면 아버지와 함께 오는 기분이 어떨까 생각하곤 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많이 배워야 할 거 같다. 다만 그저 지금 생각은 오랫동안 아이 곁에 있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온이의 친가, 외가에 유명 예능인이 많다. 아빠는 배우, 엄마는 발레리나, 고모(엄정화)도 가수 겸 배우, 외할아버지(윤일봉)와 외할머니의 남동생(유동근) 역시 배우다. 아이가 어떤 일을 하길 바라나.
“지온이가 양가의 유전자(DNA)가 응집된 최신판인 건 맞다. 고모 노래 ‘배반의 장미’를 몇 번 틀어줬는데 너무 좋아하면서 몸을 흔드는 걸 보면 흥이 많긴 하다. 다만 어떤 일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긴 이른 것 같다. 행복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더 큰 욕심을 부린다면, 사랑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설이다. 올해 설 명절은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결혼 전까진 생일을 비롯한 명절을 특별히 챙겨본 적이 없다. 친척이 많지 않아서 설이면 아침에 아버지 차례 지내고 식사한 게 전부다. 아이와 함께 처가를 가는 것 외엔 이번 설도 비슷한 일정이다. 다만 한 가정의 가장이 되니까 마음가짐이 좀 달라지는 게 있다. 전에는 명절을 비롯한 가족 행사가 그저 귀찮았다면 이제는 인간의 도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점점 깨닫는 게 많아진다.”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면 좋겠다. ‘슈돌’ 출연 외에 아직 새 작품 계획은 없는데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지온이 동생 계획은) 지금으로선 반반이다. 지온이가 크는 걸 볼 때마다 너무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들 둘째를 낳는구나 싶긴 하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