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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창업설명회의 추억

입력 | 2015-02-17 03:00:00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어떤 일 하세요?” 자주 받는 질문이다. “불러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달려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곧바로 “아∼ 프리랜서시구나”라는 말이 돌아온다. 프리랜서라…. 최근 내가 대가를 받고 한 일들을 머릿속으로 늘어놓아 본다. 디자인, 워크숍 진행, 연하장 붙이기, 이삿짐 나르기, 전기레인지 방문 설치, 전시장 세팅, 공연 조명 오퍼레이팅…. 프리랜서라기보다는 잡부에 가까운 것 같다. 이런 처지니 양심상 프리랜서라는 말을 재빨리 정정하는 편이다. “아, 저는 프리랜서라기보다는 비정규 잡부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어느 날, 잡부로서 맞이하게 될 앞날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작은 물결 한 번에도 쓰나미를 만난 듯 휘청이는 통통배에 올라탄 기분.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멀미가 느껴졌다. ‘남들처럼 못 살 바에는 웃기기라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시간을 버텨 왔건만 지나온 시간마저 우스워진 기분이 들어 영 찜찜해졌다.

그 무렵 좀 더 낙관적인 그림을 그려보고자 프랜차이즈 창업설명회를 돌아다녔다. 미리 들어둬서 나쁠 거 없잖아. 가게를 하나 내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참석 신청부터 하고 보는 막무가내였다. 주위에서 하도 치킨집 치킨집 노래를 부르기에 어릴 적 정답을 모르면 3번을 찍던 심정으로 그 많은 메뉴 중 콕 하고 치킨을 찍었다.

창업설명회에서 만난 대표는 사업 설명에 앞서 본인이 성공하기까지의 역정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처음부터 가게를 크게 냈다. 망했다. ‘너무 쉽게 덤볐구나’ 지옥불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재창업을 시도했다. 또 망했다. 돈에 쪼들리고 절망하는 사이 몸까지 약해졌다. 모든 걸 포기하려다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 이를 꽉 물고 다시 또 일어섰다. 이번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초심과 진정성으로 장사에 임했다고 한다. 결국 지하에서 시작한 가게는 이제 1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개설한 프랜차이즈 업체로 성공하게 되었단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나 역시 앞에 앉아 계신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성공에 대한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또한 잊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성공한 뒤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을 망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문구가 떠올랐다. 공감을 형성하려 쓰디쓴 실패의 이야기를 꺼냈겠지만 무작정 따라 시작했다 내 인생 크게 망칠 것 같다는 직감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사업 설명이 끝난 뒤 휴게실로 이동해 치킨을 시식했다. 테이블 위로 떠도는 서먹한 분위기는 평일 낮 이곳에 둘러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쉽게 풀어졌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빈 잔에 음료를 채워 주었고 이내 숨어 있던 동지를 만난 듯 깊은 유대감을 나누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치킨 배달을 하고 있다는 스무 살 대학생에서부터 20대 중반의 딸을 둔 50대 부부까지 이곳을 찾은 사연은 다양했다. 각자 계획해 놓은 투자비용에 대해 듣고선 노랫말을 속으로 중얼거리게 됐다. ‘치킨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이제는 창업 3년 뒤 폐업률이 50%에 가깝다고 한다. 일자리가 없어 자영업을 선택한 이들에게 망해도 다시 일어설 체력과 자금의 여유가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두 번을 망하고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창업주의 이야기가 아주 먼 나라의 미담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집으로 향하는 10분 사이에 마주치는 치킨집이 열한 개다. 떡볶이, 피자, 족발, 중국음식까지 세어 보면 그 좁은 시장골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매섭게 느껴진다. 얼마 전 집 앞 볶음곱창집 옆으로 물곱창집이 하나 생겼다. ‘옆 집 물곱창 맛과 비교해 보세요’라고 내건 현수막을 보니 경쟁이 이웃을 몰아낸 풍경에 가슴이 팍팍해졌다. 갑질 논쟁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다시 또 ‘알바몬 사태’가 논란이다. 이제는 을과 을이 대립하는 서글픈 상황을 마주하며 지난 창업설명회에서 만난 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