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하는 진짜 복지이야기]
대부업체의 덫에 걸렸다면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
전가영 변호사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 씨는 점점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하루 이틀 상환이 연체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대부업체의 독촉이 시작되었다. 매일 꾸준히 독촉 전화와 문자가 오기 시작했고, 집으로 직접 방문하는 일도 잦아졌다. 일반적인 독촉 전화였지만 김 씨는 대출로 인해 독촉 전화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독촉 전화를 받게 되면 동료들이 안 좋게 생각할까 봐 더욱 전전긍긍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일도 잦아졌고, 전화 벨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가 급할 때는 제발 살려 달라면서 빌린 다음에, 갚기는커녕 그 돈으로 비싼 음식이나 사먹는 것은 도저히 봐 줄 수가 없다. 하지만 너무 심한 추심 행위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금융기관이나 추심업자들이 채무자를 폭행·협박·감금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에 채무자를 방문하는 행위 등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러한 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채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것은 당연히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독촉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는 용인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김 씨가 심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불쌍하지만, 김 씨가 돈을 빌렸고 그것을 못 갚은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법에서는 독촉 그 자체를 불법으로 보지는 않는다. 돈을 빌려 주었으면 독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김 씨 사례처럼 독촉을 받고 있는 채무자도 보호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채무자 대리인 제도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채무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이를 대부업체에 통지하면 대부업체가 채무자와 직접 연락하지 못하게 한 제도다. 대부업체는 오로지 채무자의 대리인과 채무에 대해 상의하여야 하고 채무자에게는 직접 연락할 수 없게 된다. 즉 채무자는 독촉전화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빚을 갚지 않고 독촉을 받는 채무자를 법적으로 보호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을 못 갚은 이상 독촉은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채무자 대리인 제도에 대해 채무자를 법에서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비판하기 이전에 채권자와 채무자의 객관적인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채무자에게 직접 독촉 연락 못해
이와 같은 비법률적인 방법으로 채무자를 압박하기보다는 법률적인 방법을 통해 채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럼에도 금융기관과 추심업자들이 계속해서 비법률적 방법을 고집한다면, 채무자 또한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바로 그 방어 수단의 일환으로 고안되었다.
게다가 최근 대출 이자가 낮아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일부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 이율에 맞먹는 이자를 받고 있다. 어디에서도 받기 힘든 높은 이자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루라도 연체될 때는 불법적인 추심을 교묘히 피해 가는 수법으로 채무자를 압박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채권자가 이른바 ‘갑’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채권자와 채무자가 갑과 을이 아닌 동등한 지위에서 채무를 해결해 나갈 수 있기 위해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소속 변호사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채무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하에서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적용되지 못하는 예외가 너무 많다. 은행 등 대부분의 기관을 제외하고 있어 실제로는 대부업체의 독촉 정도만이 보호된다. 예외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보면 결국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반영한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