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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南北의 설 악담과 덕담

입력 | 2015-02-22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올해 설 연휴에 전국 도로 곳곳이 주차장으로 변하는 교통지옥 속에서도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졌다. 국토교통부는 3300만 명이 귀성길에 오른 것으로 추산했다.

힘든 귀성길을 달려 고향에 모인 혈육들은 새해 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눴다. 행복하고, 건강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라는 기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직접 만나지 못하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설 인사를 주고받았다. 설 덕담은 한국인들을 다시 뛰게 한다. 응원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또 한 해 거친 세파와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긴다.

북한도 다르지 않다.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돼 고향을 찾는 귀성 물결은 사라졌지만 가족과 친지가 둘러앉아 음식과 덕담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은 여전히 남한과 마찬가지다. 노동신문은 설날 강응정이라는 사람이 자녀들에게 건넨 “건강하여 많은 일들을 잘하라”는 덕담을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남북이 고유의 세시풍속을 지키는 것은 민족적 동질성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분단 70년이 됐는데 명절마저 달라지면 같은 민족이라는 표현이 어색해진다.

남북이 공통의 명절인 설에 푸근한 덕담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성의와 배려를 담아야 하는 덕담을 해놓고 곧바로 돌아서서 뒤통수를 치지는 못할 것 아닌가. 덕담 교환은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방적 주장이나 제안보다 남북이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랭하기만 하다. 북한은 설날에도 대남(對南) 악담을 멈추지 않았다. 노동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며 “그의 경망스러운 못된 입질이야말로 북남관계의 암초이고 불행의 화근”이라고 공격했다. 박 대통령이 16일 통일준비위원회를 소집해 북한에 개혁과 대화의 길로 나서라고 촉구한 데 대한 반발이다. 김정은은 한술 더 떠 어제 서해에서 섬 점령훈련을 직접 지휘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북한의 과도한 대응이 문제지만 남한에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설을 사흘 앞두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소집해 북한에 쓴소리를 한 것은 명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16일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김정일의 생일이어서 반발이 불을 보듯 뻔했다. 북한 상황까지 고려하는 정교한 대북정책이 아쉽다.

사흘 뒤면 박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다. 지난 2년 동안 나름 대화와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다. 남북 화해를 누구보다 원하는 이산가족에게도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은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소리만 요란한 대북정책을 ‘희망 고문’이라고 비판한다.

그나마 지난해 2월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북한의 4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우려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됐다. 북한은 올해 유독 심하게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하고 있어 또다시 위태로운 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매년 봄을 어렵게 보내면 통일대박은커녕 남북 화해의 희망마저 사라지기 쉽다.

설은 지났지만 남북이 생각을 바꾸면 덕담을 나눌 기회는 많다. 추석에 할 수도 있고, 내년 설을 목표로 삼을 수도 있다. 남북이 진정으로 대화와 긴장 완화를 바란다면 민족의 명절을 맞아 덕담 나누기를 피할 이유가 없다. 남북이 설 덕담을 교환하는 날이 오면 ‘봄소식 전하려 했더니 그대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이었습니다’라는 용혜원의 시 ‘봄소식’을 떠올리며 추운 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는 게 대박 대북정책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