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박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인간’을 종교의 지옥과 법률의 심판대로부터 정신병동의 새하얀 침대 위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일부러 행하는 일들의 진정한 이유조차 대부분 까맣게 모른다. 우리 각자가 제 내면의 상처와 욕망에 의해 스스로를 속이며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르크스 이후 우리는 인간 주체가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인간 주체에는 중심이 없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라고 갈파했다. 요컨대,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므로, 인류는 징벌 받는 죄인이기 이전에 치료받아야 할 정신병자가 돼버렸다는 소리다. 차마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함이 아닐까. 하여 너무 비극적이어서 때로 희극처럼 보이는 인간이라는 짐승의 장르는 부조리인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소위 ‘이념 전쟁’에 활활 불타오르는 메마른 숲과 같다. 대낮의 광장에서 패거리를 짓고 서로 으르렁대는 시민들끼리도 그러려니와, 어두컴컴한 밀실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포화하는 증오와 저주에 물든 정치 성향을 띤 쓰레기 같은 문장들은 사람이 쓴 것들이 아니라 악마가 게워낸 것들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자신이 정의롭지 않다고 고해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이 원하는 열 명의 의인(義人)이 없어서 유황불에 멸망했다는데 가끔은 문득 참 남 일 같지가 않다. 이것이 과연 이념의 문제일까? 정말 그런가?
얼마 전 이 나라의 한 청소년이 ‘이슬람국가(IS)’ 조직에 가담하겠다고 중동의 사막으로 떠나 소식이 끊겼다. 단원고 학생들을 가라앉는 세월호 객실에 가둬둔 채 가장 먼저 탈출해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는 늙은 선장의 모습은 한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의 상징이듯 나는 인류사 최악의 테러집단에게서 위안을 얻으려는 열여덟 살의 우울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정신질환으로 보인다. 대중은 자신들의 정의감이 사실은 광기라는 것을 모른다. 자신들의 논리가 사실은 미신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신들의 연대감이 사실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한 웅덩이에서 자라난, 뇌가 송곳 모양에 혀가 육척 길이인 괴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백번을 양보해 대한민국 사회가 이념의 소치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이 명백하다면 나는 굳이 별 유감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곪은 정신세계를 정치라는 탈을 뒤집어쓴 채 화풀이하면서 보상받으려 하고 있다. “우리 각자가 제 내면의 상처와 욕망에 의해 스스로를 속이며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논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아무것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논쟁을 하기 전에 논쟁으로 인해 진리가 오염될까를 두려워하라는 뜻이며 인간이란 자신을 위한 약속조차 지키기 어려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계일 것이다.
청소년은 이념을 배우기 전에 먼저 이념의 허무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곧 이성적 판단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고, 또 그래야 알에서 깨어나 처음 봐 각인(imprinting)된 ‘아무나’를 부모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는 오리가 아니라 자유를 목숨처럼 여기는 숭고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념은 전향이 가능해서 이념인 법인데, 지성이 없는 인간은 전향이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과거의 노예가 되고, 심지어는 타인의 과거의 노예가 된다. 우파든 좌파든 반성과 갱신 없이 확신에 차 있는 자는 악마의 하수인임을 역사는 도처에서 증명한다. 한 개인이 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것은, 프로이트가 인간에게 규정한 무명(無明)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내면의 상처를 성찰하고 욕망을 승화시킴으로써 자신의 명징한 영혼이 자신의 주인으로 행세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는 한 사회, 나아가 한 국가도 마찬가지다. 인간 주체에는 중심이 없다며 프로이트에 순순히 동조하던 알튀세르는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감금 상태에서 삶을 마감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나라에서 공존을 설파하는 사람을 사기꾼으로 여긴다. 그 대신 나는 우리의 공멸을 걱정하는 이의 고뇌를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러한 사람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이념이란 무엇인가. 당장 가짜 이념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우리가 우리의 병든 마음과 태도를 지성과 사랑으로 치유하지 않는다면, 곧 다가올 통일 시대의 대혼돈 속에서 우리는 이 사회와 이 나라를 잿더미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이응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