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조원 쏟아붓고 열매 없는 R&D]
R&D 정책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정부가 바뀌면 연구과제도 정권의 ‘코드’에 맞춰 춤추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에 따라 ‘녹색’ ‘창조’라는 다른 이름이 앞에 추가로 붙을 뿐 사실상 같은 연구과제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또 연속성 없이 과제가 중단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힘만 쓰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러다 보니 연구소에서는 정권의 요구에 따라 연구 방향을 틀거나 이미 하던 연구와 같은 연구를 새로운 것처럼 진행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사실상 기존 연구과제와 같은 것인데도 ‘창조’란 이름이 붙어 새 과제가 내려왔다”라며 “어떻게 달라 보이게 포장할까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권마다 새 연구과제를 쏟아낸 결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가 R&D 사업과제의 수는 1998년 1만3715개에서 2013년 5만865개로 15년 만에 3.7배로 늘었다. 정부 지원규모 기준 상위 7개 연구기관의 1인당 과제 수는 평균 6건이나 된다.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일부 연구기관은 1인당 최대 연구과제 수가 30건이 넘는다.
연구기관들이 특정 분야에 천착하지 못함에 따라 연구의 파급효과를 보여주는 한국의 ‘고(高)피인용 논문’ 규모는 바닥권에 머물러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R&D 투자 상위 11개국 중 2002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의 고피인용 논문 점유율은 1.0%로 러시아, 대만에 이어 꼴찌에서 세 번째였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정부가 R&D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다 보니 대학,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이 정부 과제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연구과제의 기획부터 과감하게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