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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대통령은 외로운 자리… 잘 도와야”

입력 | 2015-02-23 03:00:00

부인상 조문객들에게 ‘정치훈수’
“나는 내각제 주장하다 망했지만 대통령 단임제로는 큰 일 못해”
문재인대표에 내각제 개헌 주문




“죽어서라도 영생(永生)을 같이하겠다.”

21일 부인 박영옥 여사를 떠나보낸 후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지인들에게 “64년 고락을 같이했는데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허망하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JP는 2008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해졌지만 휠체어를 탄 채로 고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왔다. JP 기념사업회인 ‘운정회’ 관계자는 “박 여사 임종이 임박해 의료진이 자리를 비켜주자 JP는 박 여사와 입을 맞췄다”며 남다른 부부애를 전했다. 64년 전 결혼할 때 낀 금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고인의 목에 걸어주기도 했다.

22일 박 여사의 빈소에는 한국 정계의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JP도 정치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빈소에서 ‘훈수정치’를 펼친 것이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만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김 실장에게 “(박 대통령을) 가끔 찾아뵙고 외롭지 않게 해 달라. (대통령은) 외로운 자리다”라며 “(박 대통령의) 인격은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은) 그 자체가 나라 생각밖엔 없는 분이다”라고 화답했다. JP는 박 대통령에 대해 “아버지 어머니 성격 좋은 것 반반씩 다 차지해서 결단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표적인 내각제 개헌론자였던 JP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만나서는 “대통령 단임제로는 큰일을 못 한다”며 내각제 개헌을 주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내가 내각제 주장하다 망한 사람이지만 그게 더 좋은 것 같다”면서 “5년 동안 뭘 하느냐”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는 “여야가 싸우려면 싸워도 좋은데 밖에서 하지 말고 국회 내에서 싸워 해결하면 상관없다”고 주문했다.

대북 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JP는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에게 “대북 문제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전쟁하지 않고 평화적인 통일을 원한다면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보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일 문제에 대해서도 “양쪽(한일) 지도자 간에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니,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 컨트롤하면서 시간을 가져야지 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JP는 이날 이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대통령한테 직언한다, 비판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이 총리가) 하는데, 일절 (그런 얘기를)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고 훈수했다고 전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여성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게 섬세할 텐데, 입을 다물고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가서 건의드리라고 조언했다”는 말도 했다. ‘최고의 2인자’로서 이 총리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한 셈이다.

세계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화제가 됐다. ‘20세기 세계 지도자 중 어떤 분이 괜찮나’라는 질문에 JP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베트남 혁명가 호찌민을 꼽았다. 특히 호찌민에 대해선 “공산주의자이지만 참 위대한 사람이다. 강대국 미국하고 싸워서 국토통일을 이룩했으니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어. 나머지는 다 비슷해요”라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월남(남베트남)’의 멸망을 예견했지만 키신저는 그걸 못 봤다”며 “(키신저는) 박 대통령만 못했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 정치를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현수 기자 soo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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