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성왕을 기리며 만든 향로… 儒·佛·道 포용하는 세계관 담아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공존을 실현코자 한 성왕의 원대한 계획이 예술적으로 표현돼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성왕은 쓰러져 가던 백제를 되살린 무령왕의 아들로 아버지가 닦아놓은 기반 위에 전성기를 구가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밖으로는 안정적인 국제관계를 맺고 영토 확장을 꾀하면서 안으로는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하고 보완하는 태평성대를 추구했다. 자신은 독실한 불교 신도로서 스스로를 ‘전륜성왕(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이상적인 군주)’이라고 칭하고 왜에 불교를 전파했다. 또 중국 양나라로부터 삼례(주례, 예기, 의례)에 밝은 학자인 육후를 초청해 유교적 국가 제의 체제를 정비했다.
이런 성왕을 기린 백제금동대향로인 만큼 유·불·도가 각기 특색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룬 모습이 예술적으로 잘 표현돼 있다. 힘차게 고개를 쳐든 용이 입으로 연꽃 줄기를 문 형상의 받침대는 거대한 연꽃 모양의 향로 몸체를 받친다. 부처를 보호하는 상상의 동물인 용과 만물의 생명이 연꽃에서 탄생한다는 불교의 연화화생관(蓮花化生觀)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 봉황 발밑 보주 아래로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 중 세 개는 공제선(空際線·능선처럼 하늘과 지형이 맞닿아 이루는 선)을 따라 테두리를 그리고 직선 무늬를 채운 산으로 표현돼 있다. 그 밑으로도 산이 여럿 있는데 그중 가장 위쪽의 다섯 개 산(오악)은 봉우리마다 신성한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어 다른 산과 뚜렷이 구분된다. 여기에는 국가와 왕실을 보호하고자 삼산오악(三山五嶽)을 중심으로 지내는 유교식 산천제의가 반영돼 있는 것이다. 오악 사이에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다섯 인물을 묘사한 것은 예악(禮樂), 즉 음악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불·도 삼교를 모두 수용하는 포용적 사상관은 비단 백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 모두가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적 근거를 유·불·도에서 찾았고 지역마다 달랐던 토착신앙을 세 종교를 중심으로 포섭하면서 성장했다. 고구려와 신라의 경우 대체로 기록을 통해서만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반면 백제는 유·불·도의 공존과 상보가 어떤 것인지를 향로에 구현해 후손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노중국 교수 계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