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통해 본 구한말 사대부의 삶
대한제국 시절 강진군수를 지낸 조중관이 진도군수였던 권중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군수의 권한이 예전만 못하다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 송나라 때 중국 고사를 빗대 “북산(北山)의 허물어진 집에서 물을 마시며 독서하는 것이 나의 본분인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곁들였다. 일제강점기를 코앞에 둔 당시 지방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한제국 시절 진도군수였던 권중면이 받은 편지를 묶어 만든 간찰첩 ‘양몽구독’(梁夢舊牘·꿈 같은 옛 편지들). 책미래 제공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사대부들이 주고받은 편지첩이 ‘구한말 사대부들의 편지’(책미래·작은 사진)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됐다. 총 104통의 한문 편지를 하영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부교수가 한글로 번역했다. 이 편지들의 소장자는 권율의 후손으로 진도군수 등을 지내다 한일 강제병합 직후 관직을 떠나 계룡산에서 평생 은거한 권중면(1856∼1936)이다.
권중면의 편지에는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한 일본인 상인이 1907년 2월 권중면에게 보낸 편지도 의미심장하다. “목포에 있을 때 특별히 돕고 보호해 주신 데 힘입어 한 해 업무를 마친 것과 다름없다”는 표현에서 구한말 지방관들과 교류하며 광범위하게 활동하던 일본 상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 교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한국사에서 역사적 전환기임에도 오히려 19세기보다 남아있는 자료가 적은데 권중면의 편지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료”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