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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떼이고 포 떼인 지방관들 탄식소리 가득

입력 | 2015-02-23 03:00:00

편지를 통해 본 구한말 사대부의 삶




“권한이 삭감돼 단지 ‘군수’라는 명목만 있는 것이 동병상련이라 한 번 탄식할 만합니다.”(1906년 9월 19일)

대한제국 시절 강진군수를 지낸 조중관이 진도군수였던 권중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군수의 권한이 예전만 못하다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 송나라 때 중국 고사를 빗대 “북산(北山)의 허물어진 집에서 물을 마시며 독서하는 것이 나의 본분인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곁들였다. 일제강점기를 코앞에 둔 당시 지방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한제국 시절 진도군수였던 권중면이 받은 편지를 묶어 만든 간찰첩 ‘양몽구독’(梁夢舊牘·꿈 같은 옛 편지들). 책미래 제공

힌트는 이 편지 중간쯤에 나온다. 조중관은 “세정(稅政)이 남의 손에 넘어가 깊은 밤부터 새벽까지 수없이 이리저리 굴리던 길고 짧은 계산이 물처럼 흘러가고 구름처럼 사라졌으니 다시 또한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썼다. 지방관의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였던 징세권이 다른 기관에 넘어간 것이다.

삼권분립 개념이 없던 조선시대에 지방관의 권한은 막강했다. 지방 행정은 물론이고 세수와 사법, 치안, 국방까지 광범한 국가 기능을 지방관 한 명이 모두 수행했다. 그러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고 행정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관의 권한이 축소된다. 같은 해 장흥군수였던 이장용이 권중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곳은 근자에 경찰서를 설치하기 때문에 매우 어지러워 진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어지러운 세상에서 권한이 줄어 고민에 빠진 사대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사대부들이 주고받은 편지첩이 ‘구한말 사대부들의 편지’(책미래·작은 사진)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됐다. 총 104통의 한문 편지를 하영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부교수가 한글로 번역했다. 이 편지들의 소장자는 권율의 후손으로 진도군수 등을 지내다 한일 강제병합 직후 관직을 떠나 계룡산에서 평생 은거한 권중면(1856∼1936)이다.

권중면의 편지에는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한 일본인 상인이 1907년 2월 권중면에게 보낸 편지도 의미심장하다. “목포에 있을 때 특별히 돕고 보호해 주신 데 힘입어 한 해 업무를 마친 것과 다름없다”는 표현에서 구한말 지방관들과 교류하며 광범위하게 활동하던 일본 상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 교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한국사에서 역사적 전환기임에도 오히려 19세기보다 남아있는 자료가 적은데 권중면의 편지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료”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