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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이진녕]“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청와대 이너서클에 문제 있다는 신호”

입력 | 2015-02-23 03:00:00

최근 ‘공진(共進)국가’ 책 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의원 시절 적대정치 아래서 투쟁의 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었고, MB정부의 브레인으로 활동할 때는 대통령의 국정성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추진력 중심의 사고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공진국가’는 더이상 이런 정치, 이런 국가운영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쓴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한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이진녕 논설위원

  《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낙관주의자. 세상은 왼쪽과 오른쪽의 두 눈으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믿음의 소유자. 국회 사무총장 박형준이 스스로를 묘사한 자화상이다. 그가 추구한 이념의 궤적, 직업의 편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젊은 시절 좌우를 넘나드는 철학과 사상 공부에 심취했다가 사회주의의 실패를 목도하고 개혁적 보수로 돌아섰다. 기자에서 교수, 국회의원을 거쳐 이명박(MB) 정부의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사회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최근 그가 ‘공진(共進)국가’를 들고 나왔다. 관련 저서를 내고 세미나도 열었다. 》

정부 중심의 발전국가는 한계 봉착

―공진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무슨 의미인가.


“글자 그대로 ‘함께 진화한다’는 뜻이다. 치타와 사슴처럼 쫓고 쫓기는 관계 속에서 더 빨리 뛰는 쪽으로 진화해 가는 것도 공진이고, 서로 경쟁하면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되는 것도 공진이다. 지식인들의 사유 흐름에 동승하면서 우리나라에 맞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여겨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계기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발전국가 모델을 추구했다. 대통령과 정부를 중심으로 비전을 세우고 자원을 동원해 발전을 견인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런 국가발전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 민주화로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를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높은 권리의식과 정치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함께 진화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어떻게 해야 공진할 수 있는가.

“모든 복합적 다원적 주체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설득하려는 노력,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방식으로 국가 운영이 달라져야 한다. 정치와 국정을 경험한 정치사회학자의 고뇌의 산물이다.”

―발전국가 모델에도 장점이 있었다.

“‘빨리 빨리’라는 말이 과거 60년을 상징한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존재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잘 포착한 것이 바로 산업화 모델, 즉 발전국가 모델이다. 고도성장, 강한 노동윤리, 속도전이 핵심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정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도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성장만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동안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을 감내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불균형 때문에 예전처럼 투자를 많이 해도 일자리가 많이 늘지 않고, 정부가 시장을 독려해도 시장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포용적 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성장, 동반성장, 질적인 성장의 추구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균형을 맞춰야 하고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는 대타협이 필요하다. 그동안 개인의 행복이나 삶의 질이 국가의 총량적 발전 결과로 주어지는 것으로 봤는데 지금은 개인의 삶의 질과 자유와 행복 증진에 초점을 두고 국가를 경영하는 쪽으로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복지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복지에는 시혜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또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협소하다. 복지보다는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 훨씬 크고 중요하다. 21세기 자유의 시대에서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 형태는 개인의 자아실현이고 행복이다. 따라서 단순 복지보다는 맞춤형 복지, 평생학습 같은 교육, 그리고 문화와 일자리 등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복지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처럼 선거공약으로 표가 될 만한 것을 중심으로 짜다 보니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선거를 한 번 치를 때마다 복지제도가 균형을 잃고, 복지재정은 비틀거린다.”

개인 공감 연대 중시의 共進으로 가야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우리나라 진보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정치철학적으로 20세기의 가장 큰 성과는 스탈린주의 같은 좌익 전체주의, 나치즘 같은 우익 전체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해 자유를 얻은 것이다. 우리의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좌익 전체주의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분명한 자기 좌표를 정립하는 데 소홀했다. 북한은 현존하는 가장 혹독한 전체주의 세력이다. 이런 세력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진보와 퇴행적 좌파의 구별이 어렵다.”

―보수의 문제점은….

“발전국가 모델과 결합돼 있어 국가주의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정경유착, 특권, 기득권, 부정부패 같은 부정적 요소들을 걸러내는 데 약했다. 문화적으로도 진취적이지 못해 국민에게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을 주고 젊은 세대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념 좌표로서의 공진은 중도를 의미하나.

“좌우 극단주의적인 경향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중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단순히 절충으로서의 중도가 아니라 좌우의 부정적 요소들을 걸러내고 긍정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공감, 연대, 타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공간 안에서 각자 자기주장을 하고 정치를 한다면 타협의 정치, 연대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정치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떤 이들은 정치인들의 리더십, 자질, 의식의 문제로 진단하지만 나는 제도와 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19대 국회의원이 자질이나 성실성, 전문성에서 이전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데 활력이 떨어진다. 초선도 재선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지역주의에 근거한 소선거구제와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정당의 리더도 모든 판단의 1차적 기준은 선거 승리다.”

승자 독식 대통령제는 실패 모델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틀도 문제인가.

“대통령이 5년 임기 중에 무엇을 하려면 우선 관료사회를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국회로 가면 여야의 대립구조 때문에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아무 일도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힘을 쓰면 반발에 부딪히고 지지율이 떨어진다. 못해도 마찬가지이니 3년 정도 지나면 레임덕 소리가 나온다. 결국 5년 단임제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무능한 대통령을 키우는 제도적 환경을 갖고 있다.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국가 주도의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럼 바람직한 제도와 틀은 뭔가.

“나라마다 그 나라에 맞는 역사적 경로가 있다. 우리의 발전국가 모델을 전환하려면 10∼20년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정치개혁이다. 유럽 복지국가의 성공은 극단을 배제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간에 탄탄한 정치적 타협의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도 그 길로 가려면 먼저 적대의 정치, 승자 독식의 정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연대의 정치, 타협과 공감의 정치로 전환하려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어떤 식의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말하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의 확대, 석패율 제도와 복합선거구제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다당제가 돼 연합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고 대립의 축도 다양해지고 약화될 것이다. 개헌이 권력구조만 건드려서는 안 된다. 과거의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 발전의 모델을 무엇으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야 한다. 개헌을 단순히 권력구조의 문제로만 보기 때문에 누구한테 유리하냐 불리하냐, 특정 세력이 정권을 잡기 위한 책략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승자 독식의 대통령중심제가 공진과 부합할 수 있는가.

“대표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도 지금 위기에 봉착했다.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양상이고, 의회는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에 의해 포위돼 있다. 전 세계의 90개 가까운 대통령중심제 국가 가운데 미국과 프랑스를 빼곤 대부분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다. 미국이 저 정도라면 대통령중심제가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어떤 권력구조가 좋다고 보나.

“적어도 대통령중심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어떤 권력구조이든 의회와 행정부가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핵심이다. 행정부가 의회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의회도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회의 권한은 엄청 커졌는데 그에 따른 책임은 같이 커지지 못했기 때문에 개헌을 통해 커진 권한만큼 책임도 함께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과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을 비교한다면….

“MB는 오랜 세월 기업가로 살아온 체질 때문에 현장 실무자들과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 얻는 것을 즐겼다. 반면 박 대통령은 굉장히 숙고를 해서 결정을 하고 집행하는 스타일이다. 소통에서 얼마나 대화와 토론을 많이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느냐다. 지금은 그런 부분을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것 같다.”

朴정부, ‘과정의 관리’ 리더십 취약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아쉬운 점은 뭐라고 보나(이 대목에서 그는 꽤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개혁이나 국정과제를 많이 내놓기는 하는데 과정 관리가 좀 취약한 것 같다. 지금은 국회선진화법도 있고 사회 분위기나 환경이 달라져 과거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지금 시대의 강력한 리더십은 과정의 관리를 잘하는 리더십이고, 설득과 소통과 공감을 이뤄내는 리더십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대통령이 지침을 주고 관료든 여당이든 구동하는 일원적인 리더십이 여전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너무 낮다.

“아래로 흐르는 톱다운 방식의 리더십이 되면 그 톱을 누가 둘러싸고 있느냐는 이너서클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너서클에서 문제가 생기면(실제 문제가 있느냐에 상관없이 문제인 것으로 비치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다. 리더십의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대표적인 신호가 바로 인사다.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을 운용하는 방식도 일원적인 지시 명령의 구도에서 참여와 소통과 설득의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신호들이 제대로 전달된다면 국정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