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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판매원에서 PGA 샛별로…제임스 한, 노던트러스트오픈 우승

입력 | 2015-02-23 16:16:00


생활비도 부족해 몇 번이나 골프를 포기할 뻔했다. 2006년 미국 백화점인 노드스트롬에서는 점원으로 구두를 팔았다. 한때는 통장 잔액이 200달러도 안 돼 캐디에게 줄 돈도 없었다. 대회 중에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뒤진 적도 있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골프를 향한 꿈을 놓지 않았던 재미교포 제임스 한(한재웅·34)이 신데렐라로 탄생했다.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CC(파71)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 4라운드. 세계 랭킹 297위 제임스 한은 최종 합계 6언더파 278타로 폴 케이시(영국), 더스틴 존슨(미국)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에서 승리해 생애 첫 PGA투어 트로피를 안았다. 2차 연장전에서 케이시가 탈락한 뒤 14번홀(파3)에서 열린 3차 연장전에서 제임스 한은 7.5m 버디 퍼트를 넣어 3.6m 버디 퍼트에 실패한 존슨을 제쳤다. 긴장한 나머지 존슨의 마지막 퍼팅을 쳐다보지도 못한 제임스 한은 “캘리포니아의 작은 동네 출신인 데다 학창 시절 골프 성적도 별로였다. 생계를 위해 신발까지 팔았다. 동료 선수들조차 내 이름을 제대로 몰랐다. 그런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될 줄 몰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총 주행 거리가 20만 km를 넘긴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그의 아내는 3주 후 딸을 출산할 예정이다. 제임스 한은 며칠 전 아내에게 5위 이내에 들면 차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아내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차는 말짱하니 타이어만 교체하면 충분해”였다. 우승 상금 120만6000달러(약 13억4000만 원)를 받은 제임스 한은 “100만 달러로 기저귀를 얼마나 살 수 있는 거냐. 아기 이름을 리비에라(골프장 이름)로 지으면 어떨까. 좋은 선물이 됐다”며 웃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이민간 제임스 한은 골프 연습장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네 살 때 골프를 시작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한 뒤 2003년 프로로 전향했지만 오랜 세월 눈물 젖은 빵을 씹었다. 생계 때문에 광고 회사와 골프용품점에서 일했다. 2007년 한국에서 1년을 뛴 뒤 2년 동안 캐나다 미니 투어를 전전했다. PGA 2부 투어를 거쳐 2013년 ‘빅리그’에 입성한 그는 2년 전 피닉스오픈에서 버디를 잡은 뒤 가수 싸이의 뮤지비디오 ‘강남스타일’에 나오는 말춤을 춰 화제를 뿌렸다. 뛰어난 유머 감각과 겸손한 성격에 한국(계)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는 그는 “칫솔질을 할 때나 화장실에 갈 때나 항상 내일은 잘될 것이란 말을 반복했다. 긍정의 힘을 믿었다”고 했다. 대회에 출전해 버디를 잡을 때마다 지역 어린이 병원에 기부금을 적립하는 선행도 펼쳤다.

마지막 날 제임스 한은 그린 적중률이 33.3%에 불과했지만 보기는 2개로 막고 버디 4개를 했다. 평소 속을 태우던 퍼팅이 신들린 듯 살아난 덕분이었다.

이날 우승으로 제임스 한은 간절히 원하던 ‘명인열전’ 마스터스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됐다. 세계 랭킹은 지난주 보다 211계단 상승한 86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반전의 시나리오를 썼던 리비에라 골프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할리우드에서는 이날 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제임스 한은 필드의 주연상을 받고도 남았다. 2타차로 연장전에 들어가지 못한 배상문은 공동 8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