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약세 2년… 日경제 양극화 현장
○ “살기 너무 힘들다”
지난달 4일 도쿄(東京) 미나토(港) 구 시바우라(芝浦)의 한 잡화점. 립스틱 등 인기 상품 옆에 적힌 형광색 종이 가격표는 작년 4월 소비세(부가가치세)가 5%에서 8%로 올랐을 때 한 번 고쳐진 데 이어 최근에 또다시 가격을 고쳐 올렸다. 수입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점원은 “하루하루 손님이 팍팍 주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서민의 힘든 생활은 후생노동성의 각종 통계로도 확인된다. 생활 의식 조사 최신판(2013년)에 따르면 ‘현재 상황이 매우 힘들다’ 또는 ‘어느 정도 힘들다’라는 응답이 59.9%로 조사를 시작한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4일 발표된 근로자 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1만6694엔으로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경우 전년보다 2.5% 줄었다. 리먼 쇼크 영향을 받은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22일 실시한 아베노믹스 평가에 따르면 무려 81%의 응답자가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 부도 공포 중소기업
오사카 부 모리구치 시에 있던 중소기업 메이세이 금속공업소는 엔화 약세 여파로 2013년 파산했다. 본사 주소지를 찾아본 결과 기업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리구치=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신용조사회사인 데이코쿠(帝國)데이터뱅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엔화 약세 영향으로 도산한 기업(부채 1000만 엔 이상)은 2013년(130개)의 2.7배인 345개사나 됐다. 한 중소업체 사장은 “집계에 잡히지 않는 소규모 기업까지 합치면 도산 기업은 몇 배로 늘 것”이라고 했다. 일본금형공업회 우에다 가쓰히로(上田勝弘) 회장도 “20여 년 전 금형 중소기업은 약 1만2000개였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가 폐업했다”고 전했다.
○ 여행업계와 대기업은 환호
1일 일본 도쿄 긴자에 있는 면세점 ‘라옥스’에는 중국인, 대만인 관광객이 줄지어 드나들었다. 이들은 1개에 30만 원 이상 하는 고가품을 서너 개씩 샀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수출을 주로 하는 대기업도 엔화 약세의 과실을 톡톡히 따먹고 있다. 후지쓰(富士通)는 지난해(2014년 4월∼2015년 3월) 순이익 전망치를 70억 엔 올린 1320억 엔으로 최근 발표했다. 2013년에 비해 17% 늘었다. 철강 대기업인 JFE홀딩스도 100억 엔 올려 1300억 엔으로 전망했다. 달러로 벌어들인 돈을 엔화로 환산하면서 차익이 생긴 것이다.
구마노 히데오(熊野英生)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도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연말이면 달러당 125엔(23일 현재 118엔)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도쿄·가이즈·모리구치=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