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인준 투표를 앞두고 만난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여당 내에서 예상보다 많은 반대표가 나올 수 있다”는 걱정을 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지만 경계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이 의원은 “농담이야”라며 얼버무렸지만 분위기는 이미 싸늘해졌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러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런 의심을 받아도 마땅히 항변할 수 없게 된 현실이 서글프고 부끄러웠다.
이 총리 청문회 과정에서 이른바 ‘녹음파일’이 공개된 이후 정치 담당 기자들이 종종 겪는 일이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에도 한 의원이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말한 내용을 한 기자가 녹음했고, 녹음된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치권에 회자되면서 여의도가 술렁이기도 했다.
여러 형태의 취재원 가운데 정치인은 언론과 친밀도가 가장 높은 집단이다. 정치인은 여론에 민감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의 활동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기자는 정치인이 갖고 있는 고급 정보에 목마르다. 이렇다 보니 자주 어울리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문제는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언론의 여러 가지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른바 감시견(watchdog) 역할이다.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돼야 하는 이유다. 이를 넘어 ‘공생 관계’로 발전해 버리면 언론의 기능을 잃게 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녹음을 한 기자가 이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녹음을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보다 정확한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뷰나 공식적인 발언을 녹음한다. 비공식 자리에서 한 발언을 녹음하고 기사화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취재 대상이 공인(公人)이라면 언론의 취재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현역 의원 겸 총리 후보자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공인이다.
그런데 녹음을 한 기자는 기사 작성에 활용하지 않고 녹음파일을 야당 의원 측에 넘겼다. 설령 공익적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것이고, 언론 윤리에 어긋난 행위다. 개인의 일탈로 넘겨 버리기에는 무거운 사안이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