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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덧나게 하는 부모 “넌 맨날 그 모양”… 마음의 문 더닫아

입력 | 2015-02-26 03:00:00

[학교 가기 겁나는 아이들/부모들은 어떻게]
학교 찾아가 거친 항의는 금물




《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아이들은 예은이처럼 학교보다 부모를 먼저 찾는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생 59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혼자 끙끙 앓는 경우(38.5%)가 가장 많았고, 부모에게 알린다(23.8%)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부모가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느냐에 따라 아이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도, 오히려 덧낼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지난 학기 동급생과 후배들을 때리고 돈을 뺏던 최호정(가명·15) 군은 학기 말 왕따 피해자로 처지가 바뀌었다. 최 군만 보면 휴대전화를 감추거나 눈길을 피하던 학생들은 이제 최 군에게 ‘파파보이’라고 빈정거린다. 상황이 바뀐 건 최 군이 30여 명을 때리거나 협박해 돈과 휴대전화를 빼앗은 사실이 드러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린 뒤였다. 아버지는 학교 측의 방문 요청에 응하지 않다 최 군이 출석정지 처분을 받은 뒤에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아버지는 학교로 찾아와 수업 중인 교실 문을 열고 “관련자들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전교생이 이를 목격했고 학생들은 최 군에게 “집에 가서 아빠 쭈쭈 더 먹고 오라”고 놀렸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않아 딸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도 있다. 지난해 5월 한 중학교에서 피구를 하던 박지영(가명·15) 양이 “안아름(가명·15)이 일부러 공을 나에게 맞혀 안경을 부러뜨렸다”고 부모에게 말해 부모가 학교에 항의했다. 박 양은 “평소 내가 아름이에게 ‘이전 학교에서 사고치고 전학 온 것 아니냐’며 놀려서 앙심을 품고 공을 던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양은 부모에게 “공을 일부러 던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부모는 오히려 “네 성질에 일부러 그랬을 게 안 봐도 뻔하다”며 타박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의 태도에 속이 상한 안 양은 급기야 등교를 거부하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김승혜 청예단 SOS지원단 부장은 “자식을 믿지 않거나 자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며 “부모가 올바로 개입해야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화해 손 내밀자”… 마음의 벽 허물어 ▼

상처 아물게 하는 부모… 차분한 대화로 근본 해결책 찾아야


2년이 지났지만 아들 영우(가명·16)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는다. 잘 웃지도 않는 아들 입에서 “걔네들은 잘 살겠지? 씨×… 잠도 잘 자고”란 중얼거림이 나오면 어머니 강모 씨(44)의 가슴엔 무거운 바윗돌이 올려지는 것 같다.

“아들이 나중에라도 ‘학교 폭력으로 힘들었지만 이젠 괜찮다’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들과의 긴 대화 끝에 강 씨는 아들이 바라는 게 ‘진심이 담긴 사과’라는 걸 알았다. 2년 전 아들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가해 학생들은 정학 등의 처벌을 받았고, 이들을 상대로 한 치료비 및 피해보상금 관련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터였다. 강 씨는 아들을 위해 청예단의 문을 두드렸다. “화해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해자 부모도 반색했다. 가해 학생들도 “그때 일은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싶어 했다. 사과하기까진 한 달이 걸렸다. 청예단 상담원들은 먼저 영우를 만나 ‘가해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마음이 풀릴지’ ‘화해를 하면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등을 먼저 자세히 물었다. 가해 학생들에게도 ‘어떤 방법으로 사과를 하고 싶은지’ ‘말로만 사과를 하면 과연 영우가 받아줄지’ 등을 물으며 생각할 시간을 줬다. 아이들은 “친구 집에서 같이 탕수육 시켜 먹고 게임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가해 학생들은 사과 편지를 건넸고 영우가 좋아하는 피겨(관절이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장난감)를 직접 조립해 건넸다. 영우도 폭행 당시와 그 이후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는지 이야기했고 “사과해줘 고맙다. 덕분에 예전 좋은 추억들도 기억나네. 또 다 같이 놀러가자!”라고 밝게 말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부모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자 부모들의 갈등도 녹아내렸다. 영우는 최근 친구들과 농구 모임을 시작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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