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겁나는 아이들/부모들은 어떻게] 학교 찾아가 거친 항의는 금물
지난 학기 동급생과 후배들을 때리고 돈을 뺏던 최호정(가명·15) 군은 학기 말 왕따 피해자로 처지가 바뀌었다. 최 군만 보면 휴대전화를 감추거나 눈길을 피하던 학생들은 이제 최 군에게 ‘파파보이’라고 빈정거린다. 상황이 바뀐 건 최 군이 30여 명을 때리거나 협박해 돈과 휴대전화를 빼앗은 사실이 드러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린 뒤였다. 아버지는 학교 측의 방문 요청에 응하지 않다 최 군이 출석정지 처분을 받은 뒤에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아버지는 학교로 찾아와 수업 중인 교실 문을 열고 “관련자들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전교생이 이를 목격했고 학생들은 최 군에게 “집에 가서 아빠 쭈쭈 더 먹고 오라”고 놀렸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않아 딸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도 있다. 지난해 5월 한 중학교에서 피구를 하던 박지영(가명·15) 양이 “안아름(가명·15)이 일부러 공을 나에게 맞혀 안경을 부러뜨렸다”고 부모에게 말해 부모가 학교에 항의했다. 박 양은 “평소 내가 아름이에게 ‘이전 학교에서 사고치고 전학 온 것 아니냐’며 놀려서 앙심을 품고 공을 던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양은 부모에게 “공을 일부러 던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부모는 오히려 “네 성질에 일부러 그랬을 게 안 봐도 뻔하다”며 타박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의 태도에 속이 상한 안 양은 급기야 등교를 거부하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 “화해 손 내밀자”… 마음의 벽 허물어 ▼
상처 아물게 하는 부모… 차분한 대화로 근본 해결책 찾아야
2년이 지났지만 아들 영우(가명·16)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는다. 잘 웃지도 않는 아들 입에서 “걔네들은 잘 살겠지? 씨×… 잠도 잘 자고”란 중얼거림이 나오면 어머니 강모 씨(44)의 가슴엔 무거운 바윗돌이 올려지는 것 같다.
“아들이 나중에라도 ‘학교 폭력으로 힘들었지만 이젠 괜찮다’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들과의 긴 대화 끝에 강 씨는 아들이 바라는 게 ‘진심이 담긴 사과’라는 걸 알았다. 2년 전 아들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가해 학생들은 정학 등의 처벌을 받았고, 이들을 상대로 한 치료비 및 피해보상금 관련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터였다. 강 씨는 아들을 위해 청예단의 문을 두드렸다. “화해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침내 그날이 왔다. 가해 학생들은 사과 편지를 건넸고 영우가 좋아하는 피겨(관절이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장난감)를 직접 조립해 건넸다. 영우도 폭행 당시와 그 이후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는지 이야기했고 “사과해줘 고맙다. 덕분에 예전 좋은 추억들도 기억나네. 또 다 같이 놀러가자!”라고 밝게 말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부모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자 부모들의 갈등도 녹아내렸다. 영우는 최근 친구들과 농구 모임을 시작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