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사실 소중한 낱말이 표준어 둥지 밖에서 서성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어문 정책이 표준어를 ‘서울’에서 ‘교양인’이 쓰는 말로 묶어버린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방언은 표준어에 비해 열등한 ‘시골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구찜과 아구탕’의 처지가 그렇다. 아직도 방언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귀’가 표준어이므로 ‘아구’는 절대로 써선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근데 뭐? 열이면 열, ‘아구찜과 아구탕’이라고 한다. 표준어인 아귀찜과 아귀탕은 음식점 차림표에서도 가물에 콩 나듯 보일 뿐이다. 원조 격인 마산 오동동 아구찜 골목이나 서울 낙원상가 골목 역시 마찬가지다. 아귀찜, 아귀탕이 표준어라고 그렇게 부르짖어도 언중의 입말은 요지부동이다.
거시기, 시방(時方·지금), 식겁하다(질겁하다), 참말로, 걸쩍지근하다(말 따위가 거리낌이 없고 푸지다) 등이 표준어에 오를 때도 말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방언의 냄새가 짙다며 표준어로 삼는 것을 마뜩잖아 했다. 그런데 지금 무슨 문제가 있나. 이 낱말들은 토속적인 억양과 버무려져 굳건히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아삭아삭한 콩나물에 향긋한 미나리가 섞인 아구찜과 아귀찜, 이젠 말맛대로 주문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언제까지 “아귀찜(탕)이 맞는데”라고 꺼림칙하게 생각해야 할까. 아구찜과 아구탕, 언중의 입말을 존중해 복수표준어로 삼는 걸 검토할 때가 됐다. ‘억수로’ 많이 쓰는 말이니만큼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주자는 얘기다. ‘억수로’도 아직까지 ‘굉장히’의 경상도 방언에 머물러 있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