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으며 내가 아는 한 청년이 생각났다. 그 청년 역시 작년에 부모의 결사반대로 결국 친구들만 모인 자리에서 결혼식을 했다. 반대의 이유는 신부의 학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신랑의 부모는 일류 대학 출신이고 누나도 수재로서 소위 ‘공부의 신’이다. 누나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청년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 취직했는데 평범하고 착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일류 대학 출신이 아니라며 반대하던 부모는 그렇다면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신부는 직장에 다니며 말기 암 환자인 엄마를 돌봐야 하는 처지라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긴 실랑이 속에서 엄마가 살아계실 때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던 신부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홀로 된 친정아버지마저 사돈이 참석하지 않는 결혼식을 반대하는 바람에 신랑신부는 깊은 한을 품은 채 양가 부모 없이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유명 개그맨의 말투를 흉내 내지 않을 수 없다. 올봄에도 부모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 자녀가 두 명이나 있다. 내 친구는 결혼식에는 일단 참석한다고 했지만 상처를 줄 만큼 준 상태였다. 정말 왜 그러는 걸까?
이 세상에서 당신의 딸이 가장 잘난 줄 알던 나의 엄마도 사윗감을 그다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마 어떤 사람을 데리고 갔어도 마땅치 않았을 엄마는 그러나 오래 우기지 않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다. “우리 딸이 골랐으니 괜찮은 사람이겠지.”
딸의 선택을 믿어준 엄마는 평생 우리 집에 사시면서 “내 딸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흐뭇해하셨다. 사실 자녀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 할지라도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일지 장담할 수는 없다.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를 일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