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포수 진갑용은 여전히 후배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26일 삼성이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아카마 구장에서 그는 많게는 20살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1974년 5월 8일생인 그는 얼마 있으면 만 41세가 됩니다. 현재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입니다. 한국 야구에서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인 포수가 최고령 선수가 된 건 처음입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야구를 할지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전에 터진 약물 파동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도핑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고, 그 역시 도핑에 무지했습니다. 감기약에서 약물 성분이 검출되는 바람에 그는 대표팀에서 제외됐습니다. 팬들의 비난 속에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요.
2002년의 사건은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더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그의 야구 인생도 그해를 기점으로 달라졌습니다. 이전까지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첫 우승 후에는 거의 매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지난해까지 무려 7차례나 우승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의 안방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습니다. 그의 대구 집에는 7개의 챔피언 반지가 소중하게 모셔져 있습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운을 만든 건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의 야구 신조는 “훈련은 열심히 하되, 쉴 때는 확실히 쉰다. 그리고 남은 체력은 경기에서 100% 쏟아 붓는다”입니다. 무리하게 훈련 량을 늘리기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풉니다. 장수의 비결은 역시 좋은 습관과 즐거운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좋은 파트너들을 만난 것 역시 그에겐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오승환(일본 한신), 안지만, 권오준(이상 삼성), 배영수, 권혁(한화) 등 당대의 좋은 투수들과 배터리를 이뤘습니다. 그는 “2004년의 (배)영수는 내가 평생 만나본 최고의 투수였다. 1회부터 9회까지 변함없는 공을 던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야구 선수로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훌륭한 야구 인생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이호준(NC) 처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트린 것에 대한 부러움에서 나온 말이죠. 그렇다면 ‘야구는 진갑용처럼’ 하는 게 후배 선수들의 바람이 아닐까요.
오키나와=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