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동아DB
순박해 보이는 미소는 여전했지만 웃음의 결이 달랐습니다. 27일 KIA와의 연습경기가 열린 일본 오키나와 킨 스타디움에서 만난 넥센 박병호(29)는 활짝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았습니다. 그는 LG 유망주 시절에도 밝은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웃음 뒤의 씁쓸함까지 감추진 못했었지요. LG의 2군 연습장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넥센으로의 트레이드였습니다. LG 박병호와 넥센 박병호의 차이를 만든 건 마음가짐입니다. LG에서는 ‘삼진만 당하지 말자’를 되새기며 타석에 들어섰지만 넥센에서는 ‘삼진은 의식하지 말고 내 스윙을 하자’로 바뀌었지요. 부담을 떨쳐버린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왕으로 성장했습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그의 홈런은 31개→37개→52개로 늘었습니다.
보통 선수라면 52개의 홈런에 안주할 만 합니다. 하지만 박병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홈런을 많이 치긴 했지만 시즌 내내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보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홈런 수를 늘리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그는 “작년에는 실투를 홈런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파울을 낸 적이 많았다. 공 움직임이 좋은 투수들도 잘 공략하지 못했다. 홈런 개수를 떠나 캠프 때 익힌 타격 폼을 시즌 중에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느덧 박병호는 경기 자체보다는 준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선수가 돼있었습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난해가 병호에겐 고비였다. 시즌 중반까지 좋을 때와 안 좋을 때의 차이가 적지 않았다. 홈런도 많았지만 삼진(142개)도 많이 당한 이유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걸 이겨냈다. 이미 대 타자가 된 병호가 올해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게 대견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이승엽 역시 최고의 자리에서도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1999년 54홈런을 친 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격 폼을 수정했고, 2003년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 쳤지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뒤에도 여전히 겸손한 것도 둘의 공통점입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박병호는 7시즌을 채워 해외진출자격을 얻습니다. 구단의 동의만 있다면 해외 진출이 가능합니다. 올해 강정호를 피츠버그에 보낸 넥센은 박병호의 해외 진출도 적극 돕겠다는 자세입니다.
오키나와=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