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또 엽총 살해]
현장 통제하는 무장경찰 27일 전모 씨가 엽총을 난사해 형 부부와 출동한 경찰관까지 살해한 뒤 자살한 경기 화성시의 주택 현장에서 무장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화성=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두 사람이 집에 들어간 지 2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 2층 단독주택에서 “탕” 하는 총성 두 발이 울렸다. 이어 이 집 며느리 성모 씨(51)가 2층 베란다로 황급히 뛰어나와 “도와 달라”고 외쳤다. 조 씨가 119에 신고하는 사이, 성 씨는 112에 전화해 “작은아버지가 시부모님을 총으로 쐈다”고 신고하고 1층으로 뛰어내렸다. 전 씨의 형과 형수 백 씨는 가슴에 총을 1발씩 맞고 거실에 쓰러져 그 자리서 숨졌다.
○ 수십억 원 보상받은 형과 재산 갈등
강원 원주가 주소지인 전 씨가 남양파출소에 처음 총을 맡긴 건 9일. 전 씨는 이날까지 12차례 입출고를 반복했다. 화성시를 포함한 경기도 내에는 수렵장이 없는 데다, 전과 6범인 전 씨가 이 같은 반복 입출고를 계속해도 경찰은 아무런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살해된 전 씨의 형은 인근 지역이 개발되면서 수십억 원대의 토지보상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돈으로 3년 전 집과 바로 옆의 3층 원룸을 지어 임대료로 노후 생활을 꾸렸다. 젊은 시절 광산업을 하다가 실패한 동생도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해 큰돈을 번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 백모 씨(76)는 “동생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승용차에 기사를 대동하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 전 식당을 접은 이후 동생 전 씨는 형에게 의존했다. 살해된 전 씨 부부와 오래 알고 지낸 한 주민은 “평소에도 동생이 술만 먹으면 형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곤 했다. 동생과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전 씨 차에서 발견된 편지지 5장, 수첩 한 장 분량의 유서에는 형에 대한 오랜 원망이 담겼다. 유서에는 “이날을 위해 내가 만든 완벽한 범행이다. 세상 누구도 전혀 알 수 없고 눈치챈 사람도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수렵 기간-명절 겹친 시기 위험
전문가들은 평소 감정 다툼이나 경제적 갈등이 있는 가족 간에는 명절 전후에 분노가 터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남궁기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가족 간 이해관계는 남보다 더 복잡해 애증의 진폭이 더 크다”며 “1년에 한두 번 가족과 만날 때 내재된 갈등이 증폭되면 폭력으로 번질 위험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수렵 기간(11월∼2월·지자체별 기간 내 결정)과 겹치는 설 전후에는 가족 불화가 총기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2000년 이후 발생한 민간인 총기 살인사건 10건 중 8건(6건은 가족 간 갈등)이 이 기간에 발생했다. 2005년엔 경기 파주에서 유산 상속 문제로 형제들과 갈등을 겪던 이모 씨(66)가 설을 쇠기 위해 셋째 동생 집에 모여 있던 제수와 조카 등 3명을 엽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했다.
화성=박성민 min@donga.com·강홍구 / 강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