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여자들/캐롤라인 무어헤드 지음/한우리 옮김/536쪽·1만8000원·현실문화
◇인류/로베르 앙텔므 지음/고재정 옮김/466쪽·1만9500원·그린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책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에는 수용소에 끌려온 여성들이 벌거벗겨진 채 머리를 빡빡 깎이고 죄수번호를 강제로 문신으로 새기는 참혹한 순간들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동아일보DB

70주년을 맞아 국내에도 나치 수용소를 소재로 한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영국의 기록문학 작가 캐롤라인 무어헤드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프랑스 여성의 구술과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르포르타주 ‘아우슈비츠의 여자들’과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식인 로베르 앙텔므(1917∼1990)가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풀어낸 증언문학 ‘인류’다. 각각 현지에서 2011년, 1947년 출간돼 크게 주목받았다.

여성 수감자 자네트 레르미니에가 수용소에서 그린 스케치. 한국어판에선 스케치에 색을 입혀 표지로 썼다. ⓒ Jeanette L'Herminier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세실은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된 산 자와 벌거벗긴 채 쌓인 죽은 자가 있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마주한다. 그는 시신 운송 작업에 투입됐을 때 목숨이 붙어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산 자는 그의 발목을 잡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 이를 본 독일군은 그의 눈앞에서 곤봉으로 여자의 머리를 으깬다. 그는 시체를 태우는 굴뚝 연기를 보며 살았다는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생지옥 같은 29개월의 수용소 생활이 끝나고 230명 중 49명이 프랑스로 살아 돌아왔다.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 비교적 많은 여성이 목숨을 건졌다. 가학적인 학대 속에서도 여성 간의 우정과 연대는 꽃을 피웠다. 세실은 “우리는 누구를 좋아하고 또 누구를 좋아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행동하지는 않았다”며 “그것은 우정이라기보다는 연대감이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홀로 있게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훗날 ‘31000번’ 생존자들은 수용소 생활을 증언할 때 꼭 주어를 ‘나’ 대신 ‘우리’라고 말했다.
앙텔므의 ‘인류’에선 수용소 생존자만이 깨칠 수 있는 인류, 인류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려준다. 그도 1943년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가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우리는 인류는 단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최악의 희생자로서 우리가, 박해자의 힘이 가장 악질적으로 행사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 힘은 인간의 힘들 중 하나인 살해의 힘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해자는 인간을 죽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