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약 430년 전, 원이엄마가 남편의 관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와 함께 넣어 둔 한글 편지의 일부다. 함경도에서 전승되었던 ‘도랑선비와 청정각시의 노래’는 딱 그런 심정을 잘 담아낸 신화이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라는 양반집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랑은 위풍당당하게, 성대한 혼수와 여러 하인을 데리고 신부 집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문에 들어가려고 할 때, 무엇인가가 신랑의 뒤통수를 집었다. 그 때문인지 신랑은 혼례식을 겨우 마치고 큰상을 받고서도 영 맥을 못 추었다.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도 못하고, 방에 누워만 있는 것이었다. 밤중이 되자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신랑이 첫날밤도 치르지 않은 채, 갑자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면서 기막힌 말을 하였다. “내일 오시에 저 너머 불칠고개로 단발한 놈이 넘어오거든 내가 죽은 줄 아시오.”
다음 날 신랑의 부고가 왔다. 청정각시는 그 길로 시가로 가서 삼일 동안 물만 마시며 밤낮으로 슬피 울었다.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그녀의 통곡 소리는 하늘의 옥황상제에게까지 들렸다. “나는 아직 이렇게 처량한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신승(神僧)이 청정각시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 남편을 한 번 만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청정각시의 애원에 신승은 정화수를 떠놓고 삼일 동안 기도하라고 했다. 그러나 실패. 청정각시는 또 신승에게 애원했다. “그러면 너의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 삼천 발 삼천 마디가 되게 노끈을 꼬아 안내산 금상절에 가서 그것의 한 끝은 법당에 걸고, 또 한 끝은 공중에 걸고 두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 그 줄에 손바닥을 끼워 삼천 동녀(童女)가 힘을 다해 올리고 내려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아야 만날 수가 있으리라.” 그러나 또 실패. 청정각시는 다시 한 번 신승에게 애원했다. “네가 그렇게 남편을 만나고 싶거든 참깨 닷 말, 들깨 닷 말, 아주까리 닷 말로 기름을 짜서 그 기름에 손을 적셔 찍고 말리고, 말리고 찍고 하여 그 기름이 모두 없어지거든, 열 손가락에 불을 붙여 그 불로 불전(佛前)에서 발원하면 되리라.” 그러나 또 실패. 청정각시는 네 번째로 신승에게 애원했다. “아무런 연장 없이 길 닦음을 하라.” 청청각시는 타고 남은 손가락으로 풀을 뽑고, 돌을 치우고, 흙을 고르고 하면서 길 닦음을 하였다. 마침내 만난 남편, 도랑선비.
“나와 같이 살려거든 집에 돌아가서 석 자 세 치 명주로 오대조 할아버지께서 심으신 노가지향나무에 한 끝을 걸고 한 끝은 당신의 목에 걸고 죽으시오. 죽어서 저승에서라야 우리 둘이 잘 살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죽인 죄로 이렇게 되었소.”
청정각시는 이승에서, 기쁜 마음으로 죽었다. 신랑은 저승에서, 크게 기뻐하며 각시를 맞았다. 도랑선비와 청정각시, 죽어서야 저승에서야, 비로소 부부가 된 것이다. 후에 둘은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서도 부부로 살다가 죽은 망령들을 위한 굿에서 신으로 함께 모셔졌다니, 분명 그 망령들은, 저세상에서도, 저세상에서라도 심신을 함께하고픈 부부일 터이다. 살아서도 부부, 죽어서도 부부, 그것이 부부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