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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병원비 더 내는 실손보험이 유리하다고?

입력 | 2015-03-02 03:00:00

보험료 4월달부터 내리는 대신 자기부담금 비율 20%로 인상
조삼모사 연말정산과 닮은꼴
他보험 의료비 보장이 부족하면 ‘10%보험’ 가입 진지하게 고려를




홍수용 기자

연말정산 파동을 통해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세상만사 양면성이 있다’는 쉬운 이치다.

월급에서 떼는 원천징수세액을 줄이면 근로자에게 매달 약간씩 혜택이 돌아가지만 다음 해 환급액이 크게 줄어든다. 정부가 조삼모사(朝三暮四) 정책을 펼 의도는 없었어도 이런 양면성을 고려하지 못했으니 비난을 들어도 싸다.

다음 달부터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료를 내리는 대신 자기부담금을 올리는 정부 정책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실손보험은 태아부터 노인까지 3000만 명이 가입한 ‘국민보험’이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자기공명영상(MRI) 진단비 같은 비급여 항목을 보장한다. 현재 가입자 대부분은 건보가 보장하지 않는 병원비의 10%만 내면 보험으로 나머지 90%를 충당할 수 있다. 비급여 병원비가 100만 원이라면 본인이 10만 원, 보험이 90만 원을 대는 것이다.

새 실손보험은 보험료를 낮추는 대신 자기부담금 비율을 20%로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보험료를 깎아주는 긍정적인 면과 부담금이 늘어나는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다. 처음에는 보험료가 줄지만 나중에 보험금이 적게 나오는 점이 연말정산 파동을 닮았다. 지금 부담금 10%짜리에 드는 게 나은가, 아니면 보험료가 싸지만 부담금 20%짜리에 드는 게 유리한가.

부담금 비율을 높인 배경에 힌트가 있다. 이 정책을 만든 금융위원회는 부담금 인상 이유를 ‘보험료 안정화’라고 설명한다. 즉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지급하느라 손해가 커져 보험료를 경쟁적으로 올리는 만큼 부담금을 20%로 올려 보험료 인상 러시를 진정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부담금을 높여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논리는 어설프다. 왜냐하면 지금도 부담금 20%짜리 실손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금융위는 기존 부담금 10%짜리 보험이 대부분인 시장에 부담금 20%짜리 보험 상품을 추가 허용했다.

소비자 선호도는 극명하게 갈렸다. 현재 부담금 20% 보험 가입자 비율은 전체 3000만 명 중 1%(30만 명)도 채 안 된다. 보험료를 좀 더 내더라도 위급할 때 병원비를 가능한 한 많이 보장받겠다는 게 가입자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제도 개편의 방향은 다음 달부터 부담금 20%짜리 보험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과 완전히 반대다.

정부는 누구 편일까? 부처 보험 담당자에게 “이번 개편으로 소비자가 내는 보험료 인하 규모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액 감소 규모 중 어떤 쪽이 더 큰가” 하고 물었다. 이 담당자의 답이다. “정확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없다. 다만 이미 보험사의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액 비율)은 120% 정도로 매우 높다. 가입자들이 내는 부담금이 적다 보니 과잉진료를 받는 경향이 있다. 실손보험에 가입했으면 의료기관도 비급여 치료를 권한다. 그 결과 보험료가 많이 오르고 있다.” 보험료 인상의 원인을 소비자와 병의원의 도덕적 해이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고 노후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3대 기둥(공적연금, 실손보험, 적립식 금융상품) 중 하나인 실손보험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 부담금 10%짜리 보험에 들 수 있는 한 달의 시간이 남았다. 이 기간을 충분히 활용하라. 다른 보험에서 의료비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부담금 10% 보험 가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기존 가입자는 부담금 20%짜리 보험으로 갈아타지 말고 그대로 유지하라.

부담금이 적을수록 보험료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중도 해약할 가능성이 있다면 부담금을 20%로 높이는 대신 보험료를 낮춘 상품을 고르는 게 낫다. 앞서 부처 보험 담당자도 보험료를 감안해 20%짜리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유의할 점은 보험료다. 부담금을 높여도 보험료가 기대만큼 낮은 수준으로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금융위가 처음에는 압박하겠지만 가격은 민간이 정한다. 마지못해 억지로 줄인 보험료는 시간이 지나면 원상회복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실손보험 주계약에 붙은 특약 관련 보험료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몇 년 뒤 보험료가 고무줄 늘어나듯 오르고 병원비 보장액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여론이 커지면 ‘실손보험 파동’, ‘실손보험 울화통’이 터질 수도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