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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공포정치, 더는 견딜수 없다” 러 시민 5만명 거리로

입력 | 2015-03-03 03:00:00

크렘린궁 부근서 넴초프 추모집회… 2011년 부정선거 규탄이후 최대규모
언론 “범인은 175cm 짧은 머리 남성”… 등록말소車 이용 청부살해 정황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를 살해한 범인이 신분을 감췄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록증까지 세탁한 청부살해업자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일 러시아 언론은 사건 현장의 폐쇄회로(CC)TV를 피해 정교하게 넴초프 전 부총리를 살해한 범인이 키 170∼175cm로 짧은 머리에 갈색 스웨터 차림의 남성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찰은 범인의 신분을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범인이 탔던 차도 2011년 이미 등록이 말소된 차량이었다. 범인이 이용한 차량은 러시아제 소형 승용차 ‘라다’로 원주인은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의 북오세티야 공화국 출신이다.

일부 러시아 관영 언론은 범인이 생산지 추적이 가능한 탄피를 현장에 남긴 점 등을 들어 ‘전문 킬러’가 아닐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범인이 당국의 추적을 따돌릴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사격술에도 능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범인은 넴초프의 소재를 정확하게 알아내고 권총 6발 중 4발을 가슴과 머리에 명중시켰다.

야권은 사건 배후가 크렘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을 비판한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친푸틴 세력들은 “야권 일부가 반정부 시위를 확산시키기 위해 넴초프 전 부총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이 같은 배후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넴초프 전 부총리의 사인이 밝혀질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3일로 예정된 그의 장례식이 이번 사건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1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를 계기로 대대적인 반푸틴 시위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에 앞서 장례식을 이틀 앞둔 1일 러시아 각지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이 넴초프 전 부총리를 추모하기 위한 거리 행진에 동참했다. 이들은 2012년 푸틴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강화되고 있는 숨 막히는 ‘공포정치’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외쳤다. 2011년 반정부 시위 때 나왔던 ‘푸틴 없는 러시아’ 구호도 재등장했다.

시민들은 “넴초프에게 쏟아진 총탄은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넴초프가 사망한 크렘린 궁 옆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로 몰려갔다. 러시아 언론들은 추모 행진 시작 지점에 설치된 금속탐지기에 약 5만6000명의 시민이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2011년 10만 명이 모인 러시아 총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추모 행진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가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점차 반정부 시위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날 추모 집회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니즈니노브고로드, 노보시비르스크 등에서도 일제히 열렸다.

뉴욕타임스는 “군중은 이번 행진이 야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가 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 야권이 아직 민주화 운동을 이끌 만한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해 반정부 투쟁을 계속 이어가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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