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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 더 많은 복지… 근로장려금 등 통해 자립 이끌어야

입력 | 2015-03-03 03:00:00

[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3부 : 복지 구조조정 이렇게]<上>‘퍼주는 복지’에서 ‘일하는 복지’로




복지 구조조정 작업의 한 축으로 ‘일하는 복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은 복지 혜택이 늘면서 정부 보조금만 타내려는 이른바 ‘유럽식 복지병’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간은 유지하되 일을 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하는 ‘근로 유도형 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갈 길 먼 ‘일하는 복지’

일하는 복지 모델은 영국이 1979년 마거릿 대처 총리 취임 후 줄곧 추진해온 복지제도 개혁 방안이다. 영국은 이후 노동당 정권에 이어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일하는 복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캐머런 총리는 2011년 6월 복지개혁의 7대 원칙을 선언했다. 이는 실업자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구직자나 취업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려 개인이 실업자로 남아 있는 것보다 일자리를 가지면 더 큰 보상을 얻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문가들은 복지제도 개편 때 한국도 이런 원칙을 참고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도 일하는 복지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옮겨져 왔다.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근간으로 했다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부터는 근로장려세제를 중심으로 한 ‘일하는 복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하면서 14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지원’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예산이 2010년 7조2865억 원에서 지난해 8조8168억 원으로 1조6000억 원가량 증가하는 동안 근로장려금 지급액은 4369억 원에서 6900억 원으로 2531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기초생활보장 대상과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의 성격이 다른 만큼 두 사업에 드는 돈을 직접 비교할 수 없지만 근로장려세제만으로 근로를 유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하는 복지를 유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 이번 설문에서도 전문가 10명 중 6명은 ‘근로를 유도하는 복지체계 구축’이란 총론에 찬성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의견차를 보였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근로 유인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기간을 제한하고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 및 지급액을 늘리는 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반면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은 “근로능력이 있는 가장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수급 기간을 제한하면 최저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며 “근로 유인을 위해서는 수급 기간 제한보다 급여체계를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또 복지 지원 대상자 기준을 통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은 복지 대상자의 자산을 조사할 때 △부동산 등 재산과 소득을 모두 조사해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방식 △소득만 조사하는 방식 △건강보험료 납입금만 조사하는 방식 등이 섞여 사용된다. 복지 지원 대상 기준이 복잡하다 보니 정부보조금을 타내는 방법에 익숙한 일부만 혜택을 챙기는 부작용이 생기고, 궁극적으로는 일하지 않고 복지에 안주하는 계층이 생긴다는 것이다.

○ 조 단위 적자 건보 개혁 필요

건강보험체계 개편도 시급하다. 급속한 고령화로 건강보험 지출이 늘면서 건보재정 적자 규모는 2020년에 6조 원이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선 가까운 미래에 복지 비용이 부메랑이 돼 재정을 파탄시키고 급기야 복지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전문가 10명 가운데 9명은 중산층 이상의 건보료를 올리고 가벼운 질환에 대한 본인 부담금을 높이는 개혁 방향에 찬성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내도록 납부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달 25일 당정 협의를 통해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정밀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기로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6월 중 형평성 있는 건강보험료 개선 방안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건강보험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선 찬성 의견이 많지만 시행 과정에선 세심한 사전작업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봉급생활자를 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다간 자칫 연말정산 사태 같은 사회적 반발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에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형평성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소득자임에도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는 등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복지 서비스 공급 체계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 통제력을 높여야 실제 혜택을 누리는 국민들이 복지 지출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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