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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野人·野設(야인야설)]“전엔 조금만 아프면 바로 짐 쌌죠”

입력 | 2015-03-03 03:00:00

<4>‘마지막 투혼’ KIA 최희섭




KIA 최희섭이 2일 일본 오키나와 긴 구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많은 KIA 팬이 최희섭(36)을 ‘양치기 소년’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입니다. 최근 몇 년간 최희섭은 연초마다 “올해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 말을 지킨 적은 없습니다. 부상으로, 어떤 때는 개인 사정을 핑계로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엔 단 1경기도 뛰지 못했지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타자였던 최희섭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저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해 말 김기태 감독이 KIA 새 사령탑으로 부임하지 않았다면 최희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고참 선수들과의 소통에 일가견이 있는 김 감독과 만난 뒤 최희섭은 다시 한 번 ‘마지막’을 다짐했습니다.

그런 최희섭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2일 일본 오키나와 긴 구장에서 만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 있다 또 고꾸라지겠지’ 하고 비웃는 것을 나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무슨 말을 해도 비난을 받았고, 그런 사실이 힘들기도 했다. 지금은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최희섭은 큰 덩치와 달리 마음이 무척 여립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야구를 포기하려 했던 적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KIA 관계자는 “그동안 희섭이는 몸도 좋지 않았지만 마음의 병이 더 컸다. 올해는 많은 걸 내려 놓은 탓인지 무척 밝아졌다. 최근 몇 년을 통틀어 올해처럼 열심히 팀에 녹아든 것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최희섭은 지난해 말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린 마무리훈련에 고참 선수로는 유일하게 참가했습니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동참이었습니다. 이후 올해 스프링캠프까지 4개월간의 긴 훈련을 모두 소화했습니다. 캠프 막판 허리가 좋지 않았지만 연습경기까지 뛰었습니다. 최희섭은 “아마 예전의 나였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귀국한다고 했을 것”이라며 웃더군요.

올해 KIA의 전력은 하위권으로 평가받습니다. 군에 입대한 안치홍 김선빈 등 빠진 선수는 많은 반면 전력은 거의 보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훈련한다고 했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른 한국, 일본 팀과의 9차례 연습경기에서 전패를 했습니다. 9경기 동안 내준 점수만 무려 103점입니다.

부족한 전력을 상쇄할 수 있는 건 팀 분위기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선수가 최희섭입니다. 최희섭은 일단 훈련까지는 ‘완주’를 했습니다. 김 감독은 “희섭이가 아프지만 않고 엔트리에 들어 있는 것 자체가 우리 팀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최희섭은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 손을 내밀어주신 감독님과 팀 동료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많은 것을 받아왔지만 이젠 내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몇 년 만에 그는 동료들과 함께 출발선에 섰습니다. 마지막 테이프를 끊을 때도 동료들과 같이 있어야 비로소 팬들도 최희섭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오키나와=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