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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발상의 전환]삶과 다름없는 행위예술: 작품으로 들어온 옛사랑

입력 | 2015-03-03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먼 훗날 자신의 옛사랑을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회한이든 애틋함이든, 그 심경은 단순치 않을 거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보는 상황이라면? 표정 관리가 어려울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현대미술에선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공적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위험성, 우연성이 개입되고 그 결과는 종종 예측불가다. 주로 작가가 이를 자초한다. 삶의 실제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현재 69세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세대 행위예술가로서 현대미술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마련된 그의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Artist Is Present·그림)’는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736시간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850만 명이 미술관을 찾았을 정도다.

이는 미술관의 개관 시간부터 저녁까지 작가가 꼼짝 않고 테이블 앞에 마주앉는 관객과 1분 동안 말없이 바라보는 퍼포먼스였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냉철함을 유지하던 그녀 앞에 한 남성이 나타났다. 감았던 눈을 뜬 아브라모비치는 그를 알아보고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그는 다름 아닌 아브라모비치의 옛 연인이자 작업 파트너였던 우베 라이지펜(울라이)이었다.

1976년부터 13년 동안 동고동락한 커플은 이후 22년 동안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러다가 예측하지 못한 이 순간, 바로 앞에 마주한 옛 연인이란! 주어진 침묵의 1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공감하며 관객들 또한 숨을 죽였다. 아브라모비치가 퍼포먼스의 규칙을 어기고 울라이에게 내민 손을 그가 맞잡자 지켜보던 이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서로 쳐다보기만 하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였다. 작가 앞에 앉은 수많은 참여자 중에는 레이디 가가와 같은 유명인사도 있었다. 퍼포먼스는 영상기록뿐 아니라 비디오게임으로도 만들어졌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디지털 시대 대중의 관심을 끈 이 작업의 방식은 순전한 아날로그였다. 작가가 주장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순한 진실’. 그건 눈으로 직시하는 소통이다. 자리에 앉은 다수가 작가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이유였다. 그만큼 절실하게 우리에게 필요한.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