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3월의 주제는 ‘정직’]<39>어느 대학원생의 눈물
국제 학술단체에 근무하는 김모 씨(28)는 오늘도 눈 빠지게 논문을 검색한다. 이곳에는 한 달에도 수십 편의 논문 게재 의뢰가 들어온다. 김 씨의 일은 좋은 연구물을 선별해 학술지에 싣는 것. 제목과 내용만 훑어보고 넘겨도 되지만, 김 씨는 제1저자와 제2저자의 최근 발표 논문을 모두 검색해 비교한다. 이렇게 샅샅이 검색하다 보면 꼭 ‘이상한 냄새’가 나는 논문이 발견된다.
몇 해 전 대학원생이 발표한 논문과 비슷한데, 제목과 목차 단어가 조금 바뀐 채 뜬금없는 제2저자가 등장하면 의심을 해야 한다. 논문 발표 실적은 필요한데 연구하기 귀찮은 교수들이 제자의 논문을 적당히 수정해 자기 이름을 제2저자로 올리는 꼼수를 부리기 때문이다. 학계에 만연한 ‘제자 논문 실적 가로채기’는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조사 결과 ‘꼼수 논문’이 확실하면 게재를 거부하고, 관련 학술단체에 교수의 이름과 비위 사실을 통보한다.
그는 결국 학자의 길을 포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참아라”라며 만류했지만 ‘정직’이 휴지조각 취급당하고 있는 학계 분위기에 회의감이 들어 다른 선택을 했다. 처음엔 그의 유별난 추적 활동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동료들도 이젠 “저렇게 해야 교수들도 논문을 발표할 때 연구 성과를 가로채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며 성원을 보내고 있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지난해 전국 대학원생 4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논문·연구 관련 비리를 겪어봤다”는 응답자는 33%에 달했다. 가장 자주 겪는 비리 유형으로는 ‘논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넣거나, 반대로 참여자의 이름을 빼버리는 것’이 꼽혔다.
김 씨는 “학계의 나쁜 관행에 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도 학문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라며 “작은 노력이지만 정직하지 않은 학계 관행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