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
법무병과 최초의 여성 장군 출신인 이은수 변호사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3년간 군 생활의 애환을 이렇게 회고했다. 창군 이래 첫 여성 법무관으로 군문에 들어선 그에겐 어딜 가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인사 때마다 군 안팎의 관심이 쏠리면서 뜻밖의 유명세도 치렀다.
군 사법수장(고등군사법원장)에 오르기까지 그는 갖은 차별과 불이익을 겪어야 했다. 다니던 직장의 성차별이 싫어 군인의 길을 택했던 그는 또다시 ‘유리천장’과 맞닥뜨렸다고 한다.
지난해 해군 대위로 전역한 B 씨는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성희롱을 일삼는 상관의 명단이 적힌 ‘블랙리스트’를 동료들과 주고받았다고 한다. 상관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신고하겠다는 후배를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며 말린 적도 많았다.
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는 불의를 당한 여군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재갈’과도 같았다. 그는 “여군의 근무여건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군을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여군 1만 명 시대를 맞았지만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적폐가 일소되지 않는 한 여군은 철저히 ‘을(乙)’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매년 급증하는 여군 대상 성범죄가 그 방증이다. 군내 성범죄는 2010년 56건에서 2013년 105건으로 2배가량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2010년보다 3배 정도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5년간 발생한 여군 피해 범죄 132건 가운데 성범죄 사건이 83건이나 된다.
더 큰 문제는 고위 지휘관까지 성범죄자로 전락하는 믿지 못할 현실이다. 현역 사단장과 여단장까지 성범죄로 사법 처리되는 지경이 되도록 사태를 방치한 군 수뇌부는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 대책이 급선무다. 성 관련 피해를 당한 여군의 신분을 철저히 보장하고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범죄 피해 여군을 은밀하게 다른 부대로 전출한 뒤 가해자 조사를 하는 등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피해 여군이 따돌림을 당하고, 죄인 취급을 받는 현 풍토에선 군내 성범죄 척결은 요원하다.
‘무관용 원칙’의 예외 없는 실천도 중요하다. 계급을 악용한 군내 성범죄는 일반 사회의 그것보다 더 악랄하고 치졸한 인권유린 행위다. 가해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파면과 계급강등 등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군내 성범죄자는 패가망신할 정도로 처벌하겠다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공언이 ‘공언(空言)’이 돼선 안 된다.
아울러 여군을 ‘전우’와 ‘동료’로 대하는 근본적 인식 전환도 절실하다. 여군을 군내 성소수자로 폄훼하고 ‘하사 아가씨’로 부르는 군 안팎의 문화지체 현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21세기 선진강군’ 건설은 영영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