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기재부에 도입 건의
신일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타깃이 된 것은 2000년대 중반. 경영 사정이 어려워져 오너가 지분을 팔아 운영자금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재계에서는 “오너의 경영 능력과 별개로 50년간 지켜온 기업의 경영권을 단 1년 만에 위협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차등의결권 같은 보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상장사 100곳 이상 ‘경영권 위험’
수년째 논의만 되고 시행되지 못했던 차등의결권 제도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 1표’가 아니라 주식마다 각기 다른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과 함께 대표적인 경영권 보호 수단으로 꼽힌다.
차등의결권 도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일반 주주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비(非)상장 기업이나 신생 기업의 경우 처음부터 의결권 여부를 알고 선택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기존 상장사에 창업자 가문 등 특정 주주에게만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것은 주주평등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윤승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주주의 경영진에 대한 감시권을 약화시켜 무능한 경영진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제도 도입 시점부터 1년마다 1개 의결권을 추가해 보유 기간이 길수록 의결권이 많아지는 프랑스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단기 시세차익과 배당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와 달리 경영진과 회사의 장기적 경영상황에 관심이 높은 장기 투자자의 의결권을 점차 늘리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차등의결권은 투자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주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혀주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 주요 선진국 대부분 시행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2000년대 초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은 ‘모범회사법’에서 다양한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주당 1개 의결권이 부여된 보통주와 달리 여러 주식을 묶어야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단원주’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처럼 1주 1표 원칙이 엄격했던 홍콩도 차등의결권 도입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9월 차등의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알리바바 상장을 미국에 내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선진국의 차등의결권은 마음 놓고 투자를 받아 신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며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역시 차등의결권을 활용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다”고 설명했다.
:: 차등의결권 제도 ::
기업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호 등을 위해 주식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어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현행 한국 상법은 주주평등 원칙에 따라 1주에 1개 의결권만을 부여하고 있어 차등의결권 부여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