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3월의 주제는 ‘정직’]<40>서울 부정승차 하루 88건 적발
박 대리는 남자에게 방금 사용한 카드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남자가 내민 카드는 일반 교통카드였지만 확인 결과 방금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박 대리가 “이 카드가 아니라 방금 노인용 카드를 사용하신 것 같다”고 말하자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증거 있느냐”며 소리를 높이던 남자는 욕설까지 내뱉었다. 박 대리는 남자를 진정시킨 뒤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증거 영상을 보여줬다. 실버카드를 사용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에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박 대리는 “부정승차가 적발돼도 발뺌을 하는 승객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철역 현장 근무자들이 말하는 부정승차 방법은 천태만상이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앞사람이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나갈 때 바짝 붙어서 나가는 ‘얌체형’이 많다. 간절한 표정으로 화장실이 급하다며 잠시 개찰구를 열어달라고 하고서는 직원이 개찰구를 열자마자 줄행랑을 치는 ‘연기형’도 있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의 부정승차 적발 건수는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서 1만4538건,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1만7570건에 이른다. 두 기관을 합하면 매일 88건 정도의 부정승차를 적발하는 셈이다. 1∼8호선에서 부정승차 부가금으로 지난해에만 11억 원을 걷었지만 적발되지 않은 부정승차로 인한 피해는 이 액수를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속 인력이 부족해 실제 이뤄지는 부정승차에 비해 적발 건수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부정승차는 다른 승객들에게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심어주기도 한다. 대학생 손모 씨는 “교통카드를 깜박해서 집까지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비상 개찰구로 그냥 들어가는 사람을 보고 따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누적된 부정승차로 인한 지하철 운영 재정 누수는 운임 상승 등 전체 시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단속으로는 부정승차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시민들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