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나이가 드니까 막내아들보다 어린 학생들이 귀여워서 야단치지 못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래서 호되게 꾸짖는 대신에 나름대로 고안해낸 방법이 있다는데, 그것이 참 시인답다.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들이 한 번 잘못하면 선생님 손을 1분 동안 꼭 잡고 있기, 또 잘못을 저지르면 조회시간에 선생님과 팔짱 끼고 서 있기, 그 다음 벌칙은 3분간 선생님을 꼭 안고 있기. 그런데도 잘못을 반복하면 교무실에 가서 교감 선생님 안아 드리기, 그 다음엔 교장 선생님 안고 있기다.
“야 이 녀석아, 교장 선생님 안고 있으니 좋으냐? 넌 앞으로 또 잘못해도 아무 걱정 없겠다. 안아 드릴 사람이 많거든. 학교운영위원장님도 계시고 동장님도 계시고 파출소장님도 계시고….”
이쯤 되면 담임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나 손발이 척척 맞는다. 사실 다 큰 남학생이 선생님을 꼭 안고 있으려면 얼마나 쑥스러울까. 그 장면을 상상하니 실실 웃음이 나온다. 아마 그 학생은 차라리 몇 대 맞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 학생도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포옹해보는 게 아닐까.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를 안아본 이후 처음일지 모른다. 따라서 억지 춘향일지라도 선생님과의 포옹을 통해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따뜻한 벌이 어디 있을까.
내일이 개학이라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시인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안아주기’ 벌칙이 전국적으로 퍼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학교든 선생님들이 시인의 가슴을 가질 수 있다면 3월의 새 출발이 한 편의 서정시처럼 아름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