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한 장면.
이혼한 그는 막노동을 하거나 거리에서 반건조 오징어를 구워 팔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인물. 스포츠머리에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는 못생긴 얼굴에다 까무잡잡한 피부, 굳은살로 가득한 손바닥을 가진, 그야말로 ‘마초’ 그 자체였다. ‘게이’ 하면 최고급 슈트에 컬러풀한 양말, 올리브오일을 바른 듯한 앙칼진 머릿결, 유리잔을 손에 쥘 때 살짝 들어올리는 새끼손가락 등등의 ‘럭셔리’하고 ‘쿨’한 이미지를 떠올린 나로서는 ‘상남자’ 게이를 맞닥뜨리게 된 현실을 차라리 부정하고픈 심정마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이 있듯이 잘생긴 게이, 못생긴 게이, 감각적인 게이, 상남자 게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만큼 우린 평소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어떤 움직이지 않는 시선에 인질로 잡혀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변태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180도 뒤집는 경우가 최근 개봉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란 할리우드 영화다. 세계적으로 1억 부 넘게 팔려나간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미국에선 대흥행하고 한국에선 망해가는 이 영화는 평범한 여대생이 우연히 27세 억만장자 총각 사업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골격. 남자가 사도마조히즘에 사로잡힌 변태임을 알게 된 여자는 갈등에 빠진다.
여기에 등장하는 청년 사업가 그레이는 한마디로 요약해 ‘백마 탄 변태 왕자’다. 이 남자는 젊고, 학벌 좋고, 똑똑하고, 돈 많고, 잘생기고, 몸 좋고, 매너 좋고, 피아노도 잘 치는 데다, 외로움에 사무친 표정으로 “난 당신과 안 맞아요. 날 멀리해요. 당신을 놔주겠소”나 “난 사랑을 나누지 않아요. 난 섹스만 할 뿐. 그것도 거칠게”나 “난 로맨스엔 관심 없소. 내 취향은 분명해. 그 입술을 깨물고 싶소” 같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대사만 콕 집어 늘어놓는다. 여자에게 졸업선물로 빨간 스포츠카를 선물하고, “드라이브 가자”면서 헬기에 태워 시애틀의 낭만적인 야경을 보여주는 남자는 돌연 “내 세계에 온 걸 환영해요”라면서 명품 넥타이로 여자를 침대에 묶은 뒤 값비싼 공작새 깃털로 간질이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날 주인님이라고 불러”라며 낭만적으로 속삭인다. 이 남자가 사용하는 가죽채찍, 깃털, 수갑, 붓 등은 모두 최고급이며, 이런 변태장비들을 전시해 놓은 방(남자는 이 방을 ‘오락실·playroom’이라 부른다) 하나의 크기만 족히 40평은 된다. 오오! 게다가 이 남자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친구로부터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당하는 바람에 지금 같은 변태가 되어 버렸다는 그럴듯한 정신적 외상까지 지닌,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고독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변태인가, 로맨스인가.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돈의 힘은 변태도 로맨스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마술을 부린다는 사실을. 결국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심장이 느끼는 위험하고도 묘한 이 감정의 정체가 사랑임을 짐작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흘러가지만, 본질적으로 여자가 침대 맡에서 “주인님”이라고 불렀던 대상은 남자가 아니라 남자가 소유한 수십 대의 럭셔리 카와 헬리콥터, 끝내주는 야경을 가진 펜트하우스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아내를 때리는 남편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어불성설을 늘어놓는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의 손목에 롤렉스 금딱지 시계가 감겨 있더라도 그 손은 어디까지나 나쁜 손일 뿐이다. 고(故) 김광석도 노래하지 아니하였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제아무리 돈과 사랑을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해도, 여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남자에겐 사랑이 없다. 럭셔리 변태에게 사랑은 없다.